제 1부 6장 접시꽃이 피어 있는 풍경

▲ <삽화=류상영>

"말띠에 사오월 생이라……그 집안은 궁합도 안 보고 식을 올렸나. 원래 말띠에 사월과 오월은 화기기 강해서 부부지간에 마찰이 심한 벱여. 부면장님이 그 좋은 집을 버리고 여기서 사시는 것도 다 이유가 있구먼."

"머여? 부면장님이 형님하고 사이가 안좋다믄 영 방법이 읎는 것도 아니네?"

"방법이 읎는 것은 아니지. 내 말 똑똑히 들어. 내 말대로 실행을 하믄 이번 지사 때는 존 일이 있을테니께."

"내가 승철이 증조부 지사 때 그 집 문간이라도 갈 수만 있다믄 쌀 두 가마니도 아깝지 않겄구먼."

꼬막네는 들례의 말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바짝 당겨 앉았다. 마루 밑에 숨어 있는 고양이처럼 눈을 반짝이면서도 착 내려앉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원래 비봉산 산신 줄이 보통이 넘어. 들례는 비봉산을 안 가봐서 모르겄지만 꼭데기에 산성이 있어. 비봉산 산신 줄이 장군 줄이라는 말일씨. 장군 색깔이 먼 색이냐 하믄 빨강색이여. 빨강색의 산신 깃발을 마당에 꽂아 놓으믄 그짝 기가 이쪽으로 통하게 될껴. 한마디로 말하믄 비봉산 정기가 들례 집으로 통하게 되믄, 그 댁 어른들이 들례를 한통속으로 생각을 하게 된다 이거여. 그란디 방법이 문제여. 이 집이 들례 집도 아니고, 설령 들례집이라고 해도 부면장님이 기신데서 빨간색 깃발을 세워 놓을 수는 읎잖여."

"빨간색 깃발을 세워 놓았다가는 그 머셔, 점쟁이 집처름 세워 놓으란 말여? 그람 안되지. 부면장님이 당장 뽑아 버리라고 불호령이 떨어지고 말걸."

"그렇다고 영 방법이 읎는 거는 아녀. 화단에다 대나무처럼 생긴 파란 줄기에서 빨강색 꽃이 피어나는 꽃을 심으믄 됭께."

"참말로 고맙구먼. 이 은혜는 잊지 않을껴. 냘이라도 내가 쌀 두가마니 값을 춘임이 시켜 보낼껴. 그란데 빨강 꽃이라믄 그 머여, 장미나무를 심으라는 말인가?"

"장미는 빨간색이기는 하지만 꽃이 여기저기 피잖여."

"그럼 빨간 맨드라미를 심으믄 되겄구만. 국민학교 화단에 가 봉께 맨드라미가 지랄맞게도 많이 피어 있드만."

"맨드라미파란 꽃대가 꽃을 매단기 아니고, 꽃을 밀어 올리는 꼴을 하고 있잖여. 부면장님이 들례를 큰아들이 있는 서울로 밀어 내믄 좋겄어?"
"큰아들 야기는 하지 말았으믄 좋겄어. 그릏지 않아도 승철이를 생각하믄 가슴이 내 가슴이 아닌데 고아원에서 불쌍하게 크고 있을 기문이를 왜 들먹거려."

들례는 또 눈물을 찍어낸다. 이동하의 씨받이로 들어오기로 보은댁과 약속을 한 후에 서울에 있는 고아원으로 보낸기문의 얼굴이 갑자기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대관절 먼 꽃을 심으라는 거여?"

들례는 이내 마음을 다져 먹고 다시 물었다.

"접시꽃을 심으믄 되겄구먼. 파란 줄기는 대나무고, 꽃잎은 빨강색 오방기나 마찬가징께."

"보기 좋고 깨끗하게 하얀색 접시꽃을 심으믄 안되겄구먼."

"하얀색은 백호신여. 칠성 할무니하고 할아부지가 공을 줄라고 왕림하신거나 마찬가징께 치성 드릴 일만 생기는 벱여. 그랑께 빨간색 접시꽃을 심어야지."

"내 생각대로만 된다믄 그 때 또 사례를 할팅께 섭하게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겄구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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