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인간형

방학이다. 어떻게 40일이 넘는 방학기간을 보내야하는지 고민할 여지도 없이 우리 집 두 꼬마들은 신이 났다. 가방 대신 컴퓨터와 노트북으로 무장을 하고, 책이나 공책 대신 손에는 게임기가 떠날 줄을 모른다. 가끔가다 터지는 환호성은 '대~~한 민국!'을 외치던 월드컵 4강 진출 때 보다 훨씬 더 강렬하다.

문화상품권이란 건 영화나 공연과 같은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아이템 구입과 mp3에 최신음악 다운받기나, 사이버 머니를 쌓아두는 주요한 유가증권인 셈이다.

어디 그 뿐일까? 손가락 하나로 혹은 조이스틱 하나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대부분의 운동경기를 섭렵하고 있다.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고 농구도하고 스키도 타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자유롭게 사이버 세상을 누비고 있는 건 분명하다.

한참 전에 어느 선생님께서 수업을 하시는데 학생들이 도통 필기를 하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에 칠판에 그려놓은 그래프와 수식을 시험문제에 똑 같이 내겠다고말씀하셨단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이 말은 들은 학생들이 바로 펜을 들고 메모할 것이라는 선생님의 생각과 달리 저마다 휴대폰을 꺼내더니 '찰칵! 찰칵!' 소리와 함께 칠판의 그래프를 찍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들이 그래프를 잘못 그려 오답을 쓰게 되는 것보다 원본을 그대로 출력해서 보는 것이 확실한 방법이라는 학생들의 주장에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고 하신다.

사실 이런 일들이 굳이 놀랄 일이나 혀를 찰 일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도 은행에서 오랜 기다림 없이 내가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사용가능한 온라인 뱅킹사용이나 굳이 건망증을 운운하며열쇠를 찾지 않아도 되는 디지털 도어뿐 아니라동전 몇 개들고 앞사람 전화 끊기만을 기다리면 주황색 공중전화 대신의 휴대폰의 편리함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인터넷과 첨단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면서 사무실이 따로 없이 새로운 가상조직을 만들어 살아가는 21세기형 인간형을 바로'디지털유목민(digital nomad)'이라 부른다고 한다.디지털 유목민은 무선 인터넷이 가능한 노트북과, 초소형 외장형 하드 디스크, mp3, 디지털 카메라와 같은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광대역 통신과 방송이 결합된 사회에서 첨단기술의 특혜를 맘껏 활용한다.

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초고속 동영상 정보에 접속 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시대를 누빌 것이며 지구촌 어디에서나 정보접근과 통신이 가능해지면서 이 같은 부류가 생겨났다고 한다. 분명 정보와 지식이 중심인 이 시대에 주목을 받는 부류임에는 틀림없다.

춘추전국시대의 스타 학자 공자의 독서량은 수레를 단위로 하고 있으나 우리네 아이들은 기가바이트(gb)가 아닌가? 요즘 아이들에게 dvd에 담긴 내용을 한 수레 읽게 한다면 아마도 대대손손 읽어도 다 못 읽어 내려가지 않을까?앙증맞게 생긴 usb 하나에 담긴 활자만 하더라도 공자를 능가할 것임에 틀림없다.

아무래도 이번 여름은 내가 살던 어제에 아이들을 맞추기보다는 오늘에 맞추어 디지털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다.

▲ 김미혜 충북대 교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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