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6장 접시꽃이 피어 있는 풍경

▲ <삽화=류상영>

꼬막네의 말을 믿기로 하고 다음날 국도변에서 쌀가게 하는 배씨를 불러 쌀 두가마니를 냈다. 그 돈을 꼬막네에게 갖다 줬더니 날씨가 풀리고 난 후에 접시꽃 씨를 가져왔다.

들례는 접시꽃을 화단에 심고 거름도 듬뿍 줬다. 봄이 되자 파란 꽃대가 기분이 좋으리만큼 쓱쓱 자라기 시작했다. 6월로 접어들어서 덜 익은 목화처럼 생긴 봉우리가 성급하게 매달리자마자 목련처럼 넓적한 꽃잎을 가진 꽃이 피어났다. 키도 장대만큼은 아니지만 옥수수나 수숫대 못지않게 쑥쑥 자라났다. 그 모양이 꼬막네가 말한 것처럼 장대에 빨간색 오방기를 매달아 놓은 것처럼 보였다. 꽃잎도 아름다워서 벌 나비가 환장할 것처럼 아름다웠다.

정적이 감도는 대낮에는 어지러울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키를 세우는 접시꽃을 바라보면서 행여, 오늘부터 일까, 아니믄 내일부터 일까, 이동하가 마음을 열고 들례가 아닌 첩으로 대해주기를 기도했다. 그래야 음력 9월에 있을 조부의 제사 때 정지에서 심부름이라도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서였다.

오늘 밤은 달라질까, 내일부터는 달라지겠지. 하고 기대감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이에 8월이 됐다.

비가 올 것처럼 하늘이 잔뜩 찡그리고 있는 날 중학생으로 보이는 소녀가 찾아왔다.

"이 집이 들례라는 여자가 사는 곳이세요?"

"그른데?"

들례는 소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금방 이동하 딸이라는 것을 알았다. 세 자매의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대전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이동하를 빼닮은 애자가 당돌하게 묻는 말에 당차게 나갔다.

"저, 누구신지 아시죠?"

"모르겄는데?"

정지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던 춘임이가 물 묻은 손을 치마에 닦으며 나왔다. 들례는 이동하의 딸이 그냥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으며 경계를 했다.

"이 집이 우리 아부지 집이라는 걸로 알고 있어요. 좀 들어가도 되죠?"

애자는 들례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중학교 1학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당당하게 들례를 밀치고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아부지라니?"

"모산에서 오신 따님인개뷰?"

들례가 모르는 척 반문하는 말에 춘임이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어떻게 된 여자가 식모보다도 머리가 안 돌아가. 하긴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는 여자 같았으면 제 분수도 모르고 학산에서 살 턱이 없지. 아가씨, 나 물 좀 한 컵 줄래요."

애자는 이동하의 흔적이 묻어 있는 방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애써 참으며 들례를 싸늘하게 노려봤다.

"이봐, 학생! 부면장님의 딸이라고 그릏게 말을 막 해도 되능겨?"

"아줌마는 승철이를 낳아주었으면 계약은 끝난 거 아닌가요? 그런데도 자꾸 우리 아부지를 살살 꼬시는 이유는 뭐예요. 자기 분수도 모르고 그대도 되느냔 말이에요?"

"마……말한 것 좀 봐. 내가 은제 부면장님을 꼬였어. 이거 왜 이랴? 나두 엄연히 말하믄 피해자여."

"아가씨 물 달라는 말 못들었어요?"

춘임이 보기에 애자는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는 말이 조금도 무리가 없었다. 아니, 이동하 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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