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천호
분평초등학교 교감

요즘 아침저녁으로 무심천 도로를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코스모스가 때 이르게 피어 꽃잎을 한들거리고, 달맞이꽃이 노란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다. 각양각색의 시민들이 땀을 흘리며 무심천을 걷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전용도로를 달리는 모습도 보기 좋다. 걷는 사이사이 야외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음악도 발걸음을 더욱 경쾌하게 만든다.


한 젊은 부부가 유모차에 서너 살쯤 된 아이를 태우고 다정하게 걷고 있다. 그런데 아이가 꽃을 꺾어달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러자 엄마가 도로 한쪽에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뚝 따서 아이에게 건네준다. 곁을 지나며보니까 양손에 이미 꽃이 들려있다. 그런데도 아이가 꽃을 달라니까 엄마는 망설임 없이 또 꺾어주는 것이다. 비록 길가에 피어있는 꽃이지만 그것은 엄연히 여러 시민들을 위한 꽃이다. 혹 한 송이 정도는 자식을 아끼는 마음에서 애교로 봐줄 수도 있지만, 아이가 요구하는 대로 몇 송이를 서슴없이 따주는 것은 여러모로 보기에 안 좋다. 아무리 자식이 귀여워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어릴 적부터 가르쳐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내가 전에 근무하던 시골학교에 있을 때 일이다. 3학년짜리 사내아이가 교실에 들어오면 의자에 앉지 않고 바닥에 눕는다. 친구들하고 장난을 치거나, 어울려 놀 때도 거의 누워서 논다. 한학기가 다가도록 아이를 관찰했지만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추석 무렵 운동회를 하는데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 아버지가 마침 학교에 왔는데, 오후에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아예 운동장에 드러누웠다. 동네 사람들이 아무리 일으켜 세워도 바닥에 누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아마 집에서도 늘 그런 모습을 보였을 것이고, 아이에겐 그렇게 생활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어느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 하나 더 소개한다. 아이 한 명이 기초연산 실력이 떨어져 방과후에 교실에 남겨 보충 공부를 시켰다. 한 자리 수의 덧·뺄셈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여서 일주일동안 열심히 문제를 잘 풀면 10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사준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이튿날 아이가 선생님에게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내밀며 이렇게 말하더란다. "선생님, 저에게 1000원짜리 아이스크림 사주지 말고, 600원짜리 과자와 500원하는 음료수를 사주세요. 그러면 합쳐서 1100원이니까 선생님이 100원 손해잖아요. 그래서 제가 선생님께 100원 드리면 맞는 거예요."


아이가 돌아가고 난 다음 지난해 담임했던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해보니 그 아이 부모는 시장에서 자그마한 과일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아이는 가게에서 부모들이 손님과 거래하는 모습을 늘 옆에서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한자리수 덧·뺄셈도 잘못하는 아이가 세 자리 수의 물건 값 계산은 정확하게 해서 깜짝 놀랐다는 얘기였다.


'세 살 버릇 여든 살까지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의하면 가정에서 여섯 살까지의 성장발달과정이 한 개인의 평생을 좌우할 만큼 영향력이 크다고 한다. 또 이 시기에 기본적인 신뢰감과 불신감이 형성되고 자율성과 협동성, 독립성이 확립된다고 한다. 어릴 때의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연구 결과이다. 가정에서 부모들이 건네는 말 한마디, 자녀에게 보여주는 행동 하나가 알게 모르게 습득되고 전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반듯한 부모노릇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자기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저출산 시대에 도를 넘는 과잉보호는 오히려 아이에게 나쁜 습관을 형성시킬 염려가 있다. 누가 뭐래도 자식은 부모를 가장 많이 닮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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