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6장 접시꽃이 피어 있는 풍경

▲ <삽화=류상영>

꼬막네는 들례를 더 초조하게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릇에 남은 설탕물을 마지막 한방울까지 핥아 먹으며 딴청을 피웠다.

"우리가 이런 걸 사먹을 팔자나 되남. 부면장님께서 군수님한테 선물하시겄다고 대전까지 가셔서 미제 설탕 열댓 근 사 오신거여."

"으메, 그람 이게 미제라는 거여? 미제는 똥도 좋다는 말이 실감나는구먼. 간사한게 사람 주등이라고 하드만 한 근에 백 환짜리 설탕잉께 확실히 맛이 다르구먼. 하긴 아무리 미제가 비싸다고 해도 맛이 우리거나 똑같으믄 사람들이 미제를 찾을 이유도 읎겄지."

"한 대접 더 타 줄까?"

들례가 금방이라도 밖에 있는 춘임이를 불러 설탕물을 타오게 하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설탕물이 달아서 좋기는 하지만 배가 불러서 많이 못 먹는 흠이 있기는 햐. 집에서 귀한 손님 올 때 한대접 씩 대접하믄 참 좋겄구먼. 하지만 나 같은 이들한테는 사치품이겄네."

꼬막네는 빈 대접을 일부러 개다리소반 위에 턱 소리가 나도록 올려놓는다. 눈치가 없어도 어느 정도껏이다. 이렇게 눈치 없는 여자는 첨 본다는 얼굴로 입술을 실룩거린다.

"내 증신 좀 봐. 그릏지 않아도 꼬막네가 오믄 준다고 한 근 싸 놓은기 있는데, 그걸 워디다 뒀드라?"

들례는 뒤늦게 꼬막네의 의중을 눈치 채고 서둘러 일어섰다. 마음속으로는 만약 이번에도 효과가 없으면 내가 가만히 있는가 봐라. 라고 노려보면서 벽장문을 열었다. 벽장 안에는 푸대종이에 설탕을 한 근씩 싸 둔 것이 있다. 그 중에서 한 뭉치를 꺼내서 꼬막네 앞으로 내 밀었다.

"국산도 아니고 귀한 미제 설탕을 이릏게 많이 주믄 워틱한댜?"

"우리집에 설탕만 있는 줄 있는 기 아녀. 꼬막네가 내 말만 잘 들어 준다믄 미제 구리무도 한 통 줄 수 있어. 그랑께 어여 비방을 야기해 봐. 대관절 워틱하믄 옥천댁이 유산을 할 수 있는 거여?"

"이건 참말로 어려운 일인데 할 수 있을지 모르겄어."

꼬막네는 뒤늦게 옥천댁을 비방할 묘책을 생각해 냈다. 하지만 뜸을 들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여운을 남겼다.

"승질 급한 년은 아 떨어지겄구먼. 자꾸 사람 애간장만 태우지 말고 어여 말을 해 봐. 말을 해 봐야, 내가 어려운지 쉬운지 알 거 아녀."

"그란데 미제 구리무가 우리같은 이들한테도 효과가 있는지 모르겄어. 내 나이 벌써 마흔다섯이라 여간해서 화장발이 안 받는단 말여."

"아따, 참말로 사람 애간장을 태워도 너무하구먼. 아까 미제는 똥도 좋다고 할 때는 은제고, 미제 화장품이 얼굴에 맞니 안맞니 하믄서 사람 피를 말리는 거여. 미제가 왜 좋은지 알어? 미제화장품에는 은가루가 들어가서 좋다는 겨. 칠십 노인네도 화장발을 받는다믄 더 이상 말이 필요읎지 머. 그랑께 어여 비방을 야기해 봐. 내가 틀림읎이 미제 구리무 한 통을 줄팅께."

"시방부텀 내 말 똑똑히 들어봐. 지난번에 면장댁 개를 죽인 거는 잘 한 짓여."

"흥, 잘했으믄 뭐 햐. 효과가 하나도 읎었는데."

들례는 새삼스럽게 춘임이가 면장댁에 쥐약을 놓고 올 때까지 가슴 조이며 기다렸던 때가 떠올라서 콧방귀를 낀다.

"내 말 똑똑히 들어야 햐. 어떤 일이든 쉽게 성사가 되는 벱이 읎는 벱여.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옥천댁도 시방쯤은 속병이 들었을 거여.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에는 골병이 들었을 거란 말일씨."

"허긴 우리가 한두 번 비방을 쓴 것이 아닝께 그럴만도 하겄구만. 대관절 워틱해야 옥천댁이 유산을 할 수 있다능겨."

"내가 볼 때는 앞으로 유산은 심이 들겄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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