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6장 자반 고등어

▲ <삽화=류상영>

정지 안에는 등잔불이 없었다. 둥구나무거리에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하는데 정지 안은 벌써 어두컴컴하다.

상규네는 화를 참느라 볼을 실룩실룩 거리며 자반고등어 한 손 중에 한 마리만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 그것을 사등분으로 잘랐다.

몸통 하나와 대가리만 뚝배기에 집어넣고 나머지는 나중에 먹을 생각으로 소금 독에 묻었다.

비싼 꼬춧가루 들어가, 꼬추장 들어가, 마늘은 꽁짜로 생기는 건가? 간장 한 가지만 있어도 밥 먹는데는 지장이 읎는데, 엄한 간장 들어가 무수 들어가, 고등어가 읎어도 밥 못 먹겠다고 숫갈 내려놓는 자식들이 있는 것도 아닌데. 비싼 밥 처먹고 왜 엄한 짓만 하고 댕기는지 모르겠구먼.

활짝 열어 놓은 정지문 밖으로 둥구나무 밑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와! 와! 하는 소리로 들려온다.

무를 큼직큼직하게 토막 쳐서 뚝배기에 담았다.

고추장을 풀고 나서 파를 종종 썰고 고춧가루와 간장으로 간을 했다. 미리 까 두었던 마늘을 몇 개를 칼 손잡이 끝으로 콩콩 찧어서 뚝배기에 담았다.

언지부터 우리가 밥상에 생선 비린내를 풍기며 살았어. 제우 끼니 걱정 면할까 말까 살아강께, 세상이 돈짝만하게 뵈는 모냥이지. 장작을 뒷산에서 갈비 긁듯 그냥 박박 긁어 온다고 해도 돈을 이릏게 헤프게는 쓰지 않을껴. 새벽밥 처먹고 그 먼 범골에서 나무 해와. 반나절 걸려서 장작을 패. 및날 및칠이고 볕에서 말려. 그걸 또 학산까지 쌔빠지게 지고 가. 그 고생을 해야 제우 돈 삼백 환을 받을 수 있는데. 거기서 이십 환으로 이 잘난 고등어를 사고 싶은 배짱이 생기는 것을 보믄 신통방통하지.

상규네는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는다. 부지깽이로 아궁이 안에 있는 숯을 밖으로 끌어내기 시작한다.

둥구나무 아래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큰 소리로 웃으며 골목 안으로 뛰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궁이 앞으로 끌어 낸 숯을 부지깽이로 탁탁친다. 배추씨 크기의 불티들이 빨갛게 피어올라서 솥뚜껑위에 하얀 재로 떨어진다.

내가 싫은 소리 했다고 또, 해룡네서 탁주 마시고 있는 모냥이구먼.

정지 안에 물이 고여 오듯 시시각각으로 어둠이 차오른다. 밥상 두 개를 내려서 부뚜막에 올려놓았다.

시아버지 박평래와 시어머니 청산댁의 상은 크기는 작지만 칠이 벗겨지거나 금이 간 곳은 없다.

그러나 아이들과 박태수와 함께 먹는 밥상은 칠이 드문드문 벗겨져 나갔다.

다리가 비틀거려서 못을 박아 수리를 한 상에는 고춧가루를 뿌린 흔적만 있는 열무김치를 대접에 담아 내 놓는다.

마당 한 귀퉁이 쪼가리 밭에서 낫으로 베어낸 정구지 무친 거며, 삶은 호박잎에 된장을 담은 그릇도 모두 접시가 아니고 대접이다.

해룡네가 공짜술을 주나? 또 외상으로 달아 놓고 처마시겠지. 좌우지간 그 인간은 밤일 잘하는 거 빼놓고는 잘 하는 것이 읎는 인간이랑게.

상규네는 정지에서 상체만 내밀고 해룡네 집을 바라본다.

헛간과 안채 사이의 공간에는 땔나무가 쌓여있다. 겨울에는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막이 구실도 하고 정지와 가까워서 편리하다. 처마보다 높게 쌓였던 나뭇단이 푹 주저앉은 위로 해룡네 집이 보인다.

가게에 남포불이 켜져 있는 것으로 보아 손님이 있는 것 같았다. 남편도 가게에 앉아서 쓰잘 데 없는 소리나 지껄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시부모의 밥상을 차리기 시작한다.

이까짓 거 읎어도 밥맛만 좋은데….

아궁이 앞에서 끓고 있는 뚝배기에서 고등어자반 몸통을 꺼내 시부모 밥상위에 올려놓았다. 시부모밥상은 반찬을 담은 그릇들도 서로 색깔과 크기는 다르지만 모두 아담한 접시들이다.
<계속>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