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인터넷은 인류 최대의 백과사전의 역할을 수행하는 다매체(multimedia)이다. 다매체는 음성이나 문자, 그림, 동영상 등이 혼합된 다양한 매체를 이른다. 초기의 컴퓨터는 문자가 중심이었으나 입력과 출력의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문자는 물론이고 음성이나 그림, 동영상 등의 다양한 매체까지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디지털 시대의 독서 양식도 많은 부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제 문자를 읽는다는 소박한 개념의 독서는 다매체까지도 함께 읽어낸다는 포괄적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다매체는 읽는다는 표현보다는 보고 듣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다매체에 내포된 문자는 읽을 수 있지만, 음성이나 그림, 동영상을 읽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듣는 것이다. 그렇다면 읽는 것뿐만 아니라 보고 듣는 것도 독서의 범주에 포함 시킬 수 있는가라는 의문에 봉착한다. 엄격하게 말하면 다매체에 내포된 음성이나 그림, 동영상은 주로 문자를 보충 설명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말을 바꾸면 독자들에게 문자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자를 읽는 것뿐만 아니라 음성을 듣고, 그림이나 동영상을 보는 것조차도 독서행위에 해당한다고 정의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의 독서환경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매체비평가인 포스트 맨은 화상계 다매체가 인쇄매체를 지배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 우리를 편하게 해줄지는 모르지만 인류의 문화를 파멸에 이르게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이러한 우려와는 달리 화상계 다매체가 융성하는 속에서도 인쇄매체는 여전히 건재하다. 오히려 신문이나 잡지, 저서 등의 출간이 더욱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렇듯 화상계 다매체가 중심매체로 성장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 인쇄매체와 공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화상계 다매체는 형식 중심의 매체이고 인쇄매체는 내용 중심의 매체이다. 형식 없는 내용이 없고, 내용 없는 형식이 없듯이 화상계 다매체와 인쇄매체는 마치 동전의 앞뒤처럼 존재한다. 인쇄매체가 부재한 화상계 다매체는 앙꼬 없는 찐빵에 비유할 수 있다.

화상계 다매체와 인쇄매체는 서로 제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하면서 상호보완적 존재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빌 게이츠는 그 유명한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설립하고, 퍼스널 컴퓨터의 운영체제 프로그램인 윈도우즈 시리즈를 출시한 디지털 시대의 선두 주자이다.

하지만 그는 독서광으로 "훌륭한 독서가가 되지 않고는 참다운 지식을 갖출 수 없다. 멀티미디어 시스템이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비디오 영상과 음향을 많이 사용하지만, 그래도 책은 여전히 세부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최선의 방식이다."고 말했다.

다매체로 표현되는 영상과 음향도 인쇄매체로 대표되는 책의 기능을 빼앗을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벤저민 프랭클린도 "독서는 정신적으로 충실한 사람을 만든다. 사색은 사려 깊은 사람을 만든다"라고 주장했다.

독서는 정신적으로 충실하고 사려 깊고, 확실한 사람을 만들 수 있다. 때문에 날밤을 세워가며 독서해도 동트는 새벽에 피곤함을 느낄 수가 없다. 그것은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우수한 사상가나 시인이 저술한 책을 이해하고 감상한다는 것은, 항상 하나의 실현이요 행복한 체험"이기 때문이다. 인용한 세 사람은 동시대 사람은 아니지만 하나같이 읽는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디지털 시대 독서행위는 읽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듣는 것과 보는 것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 다매체의 속성인 듣는 행위와 보는 행위마저 읽는 독서행위를 위해 존재하는 듯하다. 이것이 화상계가 주도하는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문자는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 김재국
청주 세광중교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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