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식
수필가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싱싱한 국내산 은빛 갈치가 2천원에 3마리, 한 시간 동안 만반짝 세일합니다. 주부님들 어서 빨리 오셔서 싱싱한 갈치 사가세요." 확성기를 통해서 들려오는 이 소리에 난 귀가 번쩍 뜨였다. 그 비싼 갈치를 단 돈 2천 원에 그것도 3마리씩이나 판다지 않는가. 그 말에 남보다 한 발짝이라도 서둘러 가서 크고 싱싱한 갈치를 사올 욕심으로 난 허둥지둥 신발도 제대로 꿰지 못한 채 밖을 나섰다. 동네 골목 생선 행상 차량이 주차돼 있는 놀이터 주변엔 벌써 행상인의 그 소리에 귀가 솔깃한 주부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나도 그들 틈에 끼어 가장 살이 통통히 오른 갈치를 고르기 위한 눈대중에 여념 없었다. 그 사이 동네에 사는 많은 주부들이 갈치가 실린 행상 트럭 주변을 어느새 빼곡히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어느 주부가 궤짝 속에 가지런히 누워있는 은빛 갈치들을 몇 마리 재빠르게 고른 후 물건 값을 지불하자 행상인은 금세 얼굴빛을 고쳤다. 그리곤,

" 아주머니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 싱싱하고 큰 갈치를 어찌 단 돈 2,000 원에 그것도 3마리씩이나 팔겠습니까? 제가 땅 파서 장사하는 거 아니잖아요? 저도 먹고 살아야지요."라고 한다. 그 말에 화가 치민 듯 그 주부는 자신이 골랐던 갈치꾸러미를 갑자기 궤짝 속에 내던지며,

" 아저씨! 그럼 확성기에서 흘러나온 2,000원에 3마리란 말은 무슨 말입니까? 날도 더운데 사람 놀립니까?" 라고 하며 발끈 했다. 그녀의 말에 그곳에 모인 주부들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하나둘 트럭으로부터 발길을 돌렸다. 실은 나도 상상외로 싼 갈치 값에 한편으론 의구심을 품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혹시나 하고 달려갔던 터수였다. 나 역시 행상인의 감언이설에 순간이나마 속은 것에 부아가 치밀었으나 싼 가격에 혹했던 자신이 왠지 부끄러워 슬그머니 그 자릴 뜨고 말았다.

요즘 경제난 때문인지 이렇듯 동네를 찾는 잡상인들조차 자구책으로 온갖 달콤한 말로 호객 행위를 일삼고 있다. 금세 탄로 날 거짓임에도 그들은 일단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수단의 한 방법으로 감언이설을 서슴치 않는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감언이설을 남발 하는 게 어찌 마을을 찾는 행상인들 뿐이랴. 주변을 둘러보면 달콤한 언어로 우리들의 눈을 흐리게 하는 일들이 부지기수이다.

언어 속엔 말을 하는 사람의 사상과 정서, 교양, 지성이 깃들어 있다. 하여 몇 마디의 말로 상대방의 성격과 인품을 가늠할 수 있는 게 언어이다. 아무리 겉모습을 그럴싸하게 치장하여도 은연중 발설하는 언어의 품격만큼은 포장할 수 없다. 물론 우리가 말을 할 때 일부러 의식하여 고운 말 아름다운 말만 골라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말 한마디로 인해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진실과 어긋난 거짓의 언어로 자신의 양심을 가리는 행위는 삼가 해야 할 일이다.

언젠가 내가 속한 문학 모임에서 어느 회원이 그 자리에 없는 회원에 대하여 각기 다른 장소에서 벌써 수차례 똑같은 말을 번복하며 극구 칭찬의 말을 했었다. 그 말은 칭찬을 넘어 순전히 아부에 가까웠다.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게 아니었다. 그곳엔 인생 연륜과 문학경륜을 겸비한 문단 선배들도 함께한 자리였다. 아직은 새파란 문단 후배의 작품집을 놓고 그게 마치 인생의 지침서나 되는 양 수필계의 참고서인양 과장된 표현까지 아끼지 않았다. 이는 어찌 보면 칭찬이나 아부가 아니다. 그 도가 지나쳐 그곳에 자리한 문단 선배들이나 다른 회원들의 필력을 은근히 폄하하는 언행으로 자칫 비칠 오해의 소지가 농후한 말이었다고나 할까? 그 젊은 회원의 높은 필력만 자꾸 강조한다면 나머지 다른 문인들의 글이나 선배들의 작품은 그만큼 어림도 없다는 뜻으로 들릴 수도 있잖은가. 물론 긍정적으로 받아드릴 수 있는 칭찬의 말일 수도 있다. 하나 그런 말도 장소의 분위기나 주변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잘 고려해서 꺼내야 말하는 사람도 빛나기 마련이다. 이럴 경우 칭찬의 말이 아닌 오히려 상대방에겐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다. 그의 지나친 칭찬과 아부의 말로 말미암아 그 후배는 만에 하나 선배 및 다른 문인들의 열등감을 적잖이 유발 시켜 질투의 화살을 받는 표적이 될 수도 있잖은가. 해서 이로 인해 야기되는 온갖 후유증을 그 후배는 감당해야 할입장이 될지도 모를 일이라면 지나칠까? 말 많은 세상 옥석을 가려서 해야 애써 밝힌 자신의 뜻이 제대로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세상에 우린 지금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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