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6장 자반 고등어

▲ <삽화=류상영>
대화는 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어떤 이가 오늘은 아침을 먹고 봄 감자를 캐러가겠다고 말을 하면, 듣는 이들은 자기 일처럼 한마디씩 부조를 한다.

"감자 캘 때 밭고랑을 완전히 까 뭉겨야 애쓰게 농사짓고 흘리는 것이 읎는 벱여."

"그 말이 맞는 말여. 작년에 학산 사는 누구는 감자를 을매나 한심하게 캤는지 모를 낼라고 써래질을 하다 봉께 물에 뜬 감자만 한가마니만 건졌다잖여."

"요새 감자 한가마니 값이 을매나 하는 거여."

"아무리 싸도 보리 소출보다는 날겨. 나도 내년에는 저 건너 논에 보리를 심지 말고 감자를 심어야겄어."

"자네 그 논은 물이 차서 감자를 심을 수 있는가? 감자라는 것이 원래 물하고는 상극이잖여."

"이 사람 농사 헛 짓는구먼. 고구마가 추진 땅에 상극인벱여."

"똥싸고 앉아 있네. 장마가 이르믄 감자 썪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도 못 들어 본 모냥이구먼."

"서울 가본 놈 보다, 안 가본 놈이 더 지랄 한다니께. 감자밭에 물이 차믄 썪는 건 사실이자만, 가물면 뿌리가 번식하지 않아서 소출이 읎는 벱여."

이쯤 되면 감자를 캐겠다는 사람은 집으로 아침 먹으로 가 버리고, 남은 사람들은 고추밭에 화학비료대신 퇴비를 줘도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고 있다.

"죽쒀서 개 주는 거이 났지. 요새 비료 한 말 값하고 쌀 한말하고 같다는데 잘난 고추 및 근 따겄다고 그 비싼 비료를 줘?"

"비료 값이 또 올랐다고 하든데 그기 사실이여?"

"자다가 일어나서 봉창 뚜드리고 앉아 있구먼. 비료 값 오른 지가 언진데 인지 와서 묻는 거여."

"젠장, 농사 때려치우고 서울역이나 남대문 가서 지게꾼이라도 해야겄어. 여섯 마지기 도지 읃어서 가실에 제우 나락 열두 섬 건져서, 도조로 여섯 섬 떼고 나믄 제우 여섯 섬 남잖여. 그것만 있어도 살겄어. 세금이 여간 많아. 농지수득세 부텀 시작해서 물세 내야지, 구장 수곡 두어 말 떼야지, 군경원호금 내야지, 면사무소 운영비 한두 말 내야지. 우리 동리 군대가는 청년도 읎는데 출정비 내야지. 차 띠고 포 띠다 보믄 장기판에 장기알은 하나도 읎고 빛만 좌로우로 그어진 거하고 진배 읎는데 워티게 살겄어."

"서울에서 지게꾼을 아무나 하나. 하루에 다믄 및 백 환 씩이라도 수입을 낼 수 있는 자리 하나 읃는데 논 두마지기 값은 줘야 한다능겨. 것도 읎으믄 왼종일 다리품을 팔아야 십 환짜리 꿀꿀이죽 한 그릇도 사 먹기도 힘들다는데 뭐."

"젠장, 백날 야기해 봐야 배만 고프고 빈속에 독한 담배만 피워봤자 속만 씨리고."

사람들은 며칠 전에 했던 말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반복해도 듣는 사람은 매양 심각하게 들어 준다. 작년 이맘때 했던 말도 얼굴을 붉혀가며 훈수를 던진다. 해마다 감자를 캐면서 했던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도 등짝에 달라붙어 있는 배를 문지르며 투덜거린다.

"아부지, 진지잡수시러오시래유."

"아무지 아침 다 됐슈."

새벽이슬이 마르고 바람이 제법 눅눅해질 무렵이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이들은 졸린 눈을 비비거나 바지 안에 손을 넣어서 고샅을 박박 긁으며. 혹은 밤새 참았던 오줌을 갈기며 제 아비를 부른다. 그러면 금방까지도 상대방하고 싸움이라도 할 것처럼 얼굴을 붉히고 있던 사람들도 젠장, 밥 안먹고 사는 방법은 읎나? 또 한 술 떠먹고 쌔가 빠지게 일이나 하러 가 볼까. 라고 중얼거리며 아이들의 뒤를 따라서 집으로 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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