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6장 자반 고등어

▲ <삽화=류상영>

"난 이븐에는 틀림읎는 아들인 줄 알았는데……"

날망집은 자식 자랑을 하는 표정을 짓는 청산댁의 말을 무시해 버리고 말머리를 돌렸다. 서울에서 무얼해 먹고 사는지 소식도 없는 아들 형제들의 얼굴이 울컥 떠 올라서였다.

"학산 꼬막네도 장담을 했다고 하잖유. 이번에 만약 또 납작한 걸 낳게 되믄 손바닥에 장을 지진다고 말여유."

"면장님 승질에 눈 딱 감고 계시지는 않을 터고 꼬막네 불러다 작살을 내겄구먼."

"옛날 같았으믄이야 사기죄로 주재소에 찔러도 백 번은 찔렀겠지. 하지만 세상이 변했응께 작살은 내지 못해도 더 이상 학산에서 점쟁이 노릇 해 먹기는 심들겄어. 당장 부면장님이 가만 기시겄어? 파출소장한테 부탁을 해서라도 치도곤을 놓겄지."

"꼬막네야 주둥이 잘못 놀린 죄로 치도곤을 당하든 말든 상관이 읎지만 작은마님은 참말로 눈앞이 캄캄하시겄어."

"으이그. 이럴 때 부면장님이라도 옆에 기시면 덜 서운할틴데, 대관절 오늘이 미칠이댜?"

청산댁과 봉산댁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날망집이 측은하다는 얼굴로 혀를 차며 묻는다.

"오늘이 음력으로 오월스무이틀 아녀. 양력으로는 유월 삼십일이고."

청산댁이 자못 궁금한 표정으로 날망집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런 말 하믄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가 될련지 모르겄지만 올게가 쥐띠아녀. 쥐띠에다 음력 오월 생이믄 여자 팔자는 좋겄구먼. 오월이라서 먹을 것은 지천으로 널려 있고, 날이 좋아서 얼어 죽을 염려도 읎응께 때하고 시는 잘 타고 태어 난 거 같구먼. 문제는 작은마님이 워틱한댜. 그릏지 않아도 딸딸딸 땜시 가슴에 대못이 벡혀 있을텐데 말여."

날망집은 안됐다는 얼굴로 길게 한숨을 내쉰다. 봉산댁과 청산댁도 날망집의 말이 맞다는 표정으로 이병호집을 바라본다. 박평래가 고의적삼차림으로 털래털래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저 이는 벌써 및 번째나 저길 갔다 오능겨. 내가 볼 때는 벌써 시번 짼가 되는 거 같은데?"

너럭바위에 앉아서 곰방대를 물고 있던 변쌍출이 박평래를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 사람은 면장님이 죽으라믄 죽는 시늉도 할 이 아녀. 시방 심정은 면장님보다 더 하믄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껴. 면장님 승질에 이번에 낳은 손녀가 돌 지날 때까지는 며느리를 쳐다보지도 않을라고 할팅게."

"맞아유. 승질이 오죽 했으믄 자식한테 첩을 얻어 줬겠슈."

황인술은 팔짱을 끼고 턱 버틴 자세로 이병호 집 앞에서 내려오고 있는 박평래를 바라본다. 기억이 틀림없다면 박평래의 나이는 이병호보다 두 살이 많은 65세다. 박평래가 두 살이나 어린 이병호하고의 인연은 해방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병호의 부친인 이복만이 후지모토의 마름 일 때부터, 이복만을 상전처럼 모셨다. 그 덕분에 이복만이 후지모토의 재산을 차지한 후로는 최대의 수혜자가 됐다. 논을 열 마지기나 소작하는 가하면, 이병호의 집에서 일어나는 온갖 잡일을 처리해 주는 대가로 보릿고개에도 끼니 걱정 없이 살아가고 있다. 이병호의 기쁨이 곧 박평래의 기쁨이고, 이병호의 절망이 곧 박평래의 절망인 것을 보면 타인의 생을 사는 것 같아서 불쌍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그래도 자신도 이병호 같은 상전이 있다면 얼마든지 개처럼 충성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뗘, 두 번도 부족해서 시 번씩이나 갔다 와 봉께 인제 믿어지는가?"

박평래가 너럭바위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너럭바위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말없이 길을 터준다. 순배영감이 박평래가 힘없이 다가와서 너럭바위에 털썩 주저앉는 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

"작은마님이 딸을 낳았다고 해서 시 번씩이나 금줄을 보고 온 거는 아뉴."

"그람 면장댁 대문 앞에 탁주 통이라도 있는겨? 아니믄 금덩어리라도 숨겨 둔겨?"

박평래와 동갑내기인 변쌍출이 묻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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