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편지'

오랜만에 '옛날 편지'를 받았다. 처음에는 문득 생소했고 그 다음에는 반가움이 느껴졌다. 요즘에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한 전자메일이 확산되어 우체통으로 날아드는 우편물은 대개 고지서 아니면 각종 회사의 홍보물인 경우가 많다.

그런 우편물들은 우표도 없고, 일괄적으로 인쇄된 글씨이기 때문에 사람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다. 따라서 우편물을 받는 기분도 인간의 정감을 느끼기보다는 어떤 의무를 수행하라는 사무적이고 행정집행명령서로만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사람 특유의 필체로 적힌, 그리고 우표에 소인이 찍힌 우편물을 발견할 때 갑자기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래서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예전에 우표가 붙어 있고, 필체로 적힌 우편물에서만 느끼던 그런 정감, 그 편지를 읽기 전까지 느끼던 설레임 같은 기분들을 우리는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기분은 사소한 것이고, 새로운 디지털 도구들로 새로운 소통양식이 생겨났지만 나는 그런 옛날 편지를 통해 느끼던 기분이 소중하게만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 사람들을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미리 시간과 장소를 정하지만 사정이 생겨서 늦어지거나 약속장소에 갑자기 나갈 수 없게 되었을 때 연락할 방법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렀던 때가 생각난다.

그런데 지금은 전화 한 통으로 상황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이제는 공중전화가 거의 필요 없어졌다.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공중전화는 도심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을 거의 보지 못한다.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내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예전에 역전 앞에는 공중전화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던 풍경들이 있었다. 그 사라진 풍경들이 괜시리 그립다.

요즘 웬만한 차량에는 gps장치가 하나씩 붙어 있다. 이것을 사용해 보면 참 신통방통하다. 주소만 입력하면 정확히 문 앞까지 안내해 줄뿐더러 바꾸어야할 차선까지 음성과 그림으로 안내해 준다. 예전에는 처음 가는 길을 찾을 때 이곳 저곳에서 사람들에게 물어보아야 했고, 주소가 적힌 쪽지를 들고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던 시절이 있었다.

굉장히 불편했던 시절인데, 그 때는 다들 그런가보다 하면서 살았다.

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당장 집 안을 둘러보면 새록새록 옛날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는 물건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혹시 우리가 예전에 비해 바뀐 것은 이런 물건들 뿐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의 평수가 넓어지고, 집안의 도구들이 좋아졌을 뿐 우리 삶의 진정한 질은 그대로, 혹은 더 나빠진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물건들이 바꾸어놓은 삶의 껍데기 양식만이 예전과 지금의 차이는 아닐까하는 불안이 엄습할 때가 있다.

바뀐 것은 생활양식일 뿐 우리 영혼의 존재양식은 정체되었거나 혹은 더 나빠진 것은 아닐까? 우리가 발달한 미디어와 디지털 도구를 이용하면서 잃어버린 것들은 무엇일까? 단지 바뀐 것일 뿐인데 잃었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일까?

▲ 이재인
한국인장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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