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6장 자반 고등어
| ▲ <삽화=류상영> |
박평래는 변쌍출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말없이 주머니에서 쌈지를 꺼냈다. 손바닥 길이만한 곰방대에 담배를 눌러 담아서 불을 붙인다. 담배 연기를 코로 길게 내 뿜으며 이병호의 집 대문을 지그시 응시한다.
"암만해도 우리들 보다는 맘이 틀리겄쥬. 우리들이야 그저 맘 한 구석이 짠 할 정도겄지만, 태수 아부지야 면장님하고 여간 가찹게 지냈슈? 섭섭하기로 치자믄 맘이 터져 나가겄쥬, 머."
"구장은 말이라도 그릏게 하는 거이 아녀. 솔직히 난 아들을 낳고 딸을 낳는 것은 순전히 하늘의 뜻이라고 봐."
"여기서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남?"
순배영감이 너럭바위에 곰방대의 대통을 툭툭 털면서 반문한다.
"형님도 가만봉께 세월 헛살았슈. 다른 이들 생각은 몰라도 지는 면장님이 이븐에도 손녀를 봤다고 해서 섭섭한 거는 하나두 없다고 봐유. 대를 이어갈 손자가 읎는 것도 아니고, 손녀 하나 더 늘었다고 해서 멕이고 공부 갈킬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잖유."
"이 사람 이거 식전부터 고차원적으로 노시네. 그려서?"
순배영감은 어디 무슨 말을 하나 지켜나 보자는 얼굴로 박평래를 바라보고 있다. 옆에 앉아 있던 변쌍출이 피식 웃으며 반문했다.
"식전부텀 빈 속에 긴 말 할 필요는 읎고. 요약적으루다 말을 하자믄 그래도 이왕이믄 다홍치마라고 손자를 봤으믄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금줄을 보고 왔을 뿐유."
"나도 요약적으루다 말을 하자믄 면장님이 아무리 재산이 많다 하드라도 대문 앞에 금줄을 거는 순간 최소한도로 땅 열 마지기는 날아갔구먼. 이라고 생각하셨을 거라 이거여. 손자를 장가보내믄 저 짝에서 혼수를 해오겄지만. 손녀를 시집보낼라믄 이쪽에서 혼수를 해 줘야 항께 그 생각을 안하겄어?"
"팔봉이 아부지는 더 고차원적으로 말씀을 하시는구먼. 우린 제우 이븐에도 손녀를 봐서 면장님이 서운하시겄구먼. 이라고 까지 벢에 생각 안 해 봤는데."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박평래와 변쌍출을 번갈아 보고 있던 황인술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식전부텀 넘 일 갖고 헛심 뺄 필요 읎이 다들 그만들 햐. 태수 애비 말대로 면장님이 손녀 하나 더 늘었다고 해서 멕여 살릴 능력이 읎는 것도 아니고, 작은마님이 좀 섭섭하기는 하겠지만 이왕 낳은 딸을 도로 집어넣을 수는 읎는 노릇이잖여. 그랑께 어여 들 집으로 가 봐. 뜸북이 애비는 오늘은 깔비러 안 가도 되능개비지."
순배 영감이 사람들 틈에 서 있는 키가 큰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려유. 우리가 여기 모여서 걱정한다고 세월이 되돌아가는 것도 아닝께 그만 들어가는 거시 좋겠네유. 자! 다들 아침 먹으로 갑시다……아! 잠깐만! 이참에 한마디 할 말이 있구먼. 잠깐만 여기 좀 쳐다 봐유."
황인술은 말을 하다 말고 너럭바위 위로 올라섰다.
아직은 아침을 먹기에 이른 시간이다. 다른 날 같았으면 아이들이 부르러 올 때까지 시간을 보냈겠지만 오늘은 일찌감치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슬금슬금 돌아서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췄다.
"다른 말이 아니고, 여러분들이 보시다싶이 우리 동리 진입로 변에 풀이 장난이 아녀유. 본격적으로 여름이 되믄 풀들이 무성해져서 미관상으로도 보기가 안 좋고, 깎아내기도 힘이 들뀨.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냘 아침을 먹고 열 시부터 한 두어 시간 동안 부역 좀 해야겄슈. 그랑께 한 집에서 한 명씩은 낫이나 깔꾸리를 들고 둥구나무 밑으로 모여줘야겠슈……"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