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6장 자반 고등어

▲ <삽화=류상영>

안방은 어제 저녁부터 서너 시간 간격으로 장작불을 넣어서 방바닥은 후끈후끈 거린다. 게다가 행여 바늘만한 바람이라도 들어 올까봐 창문이며 방문에 이불호청을 걸어 놓아서 가만히 있어도 얼굴이며 목에 땀방울이 맺힐 정도다.

보은댁은 옥천댁에게 가문의 대를 이어갈 손자가 태어난 올해가 쥐때 해이며, 난 시가 밤 2시 15분이라고 정확하게 분까지 알려주었다. 더불어 쥐가 한참 왕성하게 활동할 시간에 태어나서 장차 큰 갑부가 될 것이라고 덕담을 해 주었다.

옥천댁은 딸을 셋 낳을 동안 한 번도 해 주지 않던 보은댁의 덕담이 반갑기 보다는 가슴이 아려오면서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고, 딸자식이라고 해서 자식 취급해 해 보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보은댁은 무정하게 딸자식들에게는 덕담 한마디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나서였다.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먹는 미역국을 첫국밥이라고 한다. 첫국밥은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위하여 미역국과 흰 쌀밥과 간장을 먹는데, 미역을 꺾지 않고 긴 것을 그대로 넣고 미역국을 끓인다.

옥천댁은 아이를 그 동안 셋을 낳았지만 보은댁이 끓여주는 첫국밥을 오늘 처음으로 먹었다. 보은댁은 첫째 애자를 낳을 때부터 첫국밥을 직접 차려주지 않았었다. 아이를 출산한 시간이 새벽 한시든, 다섯 시든 모내기에 정신이 없던 초여름의 오전 나절이든 점순이를 시켰다.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청산댁이나 상규네를 불러서 첫국밥을 차리게 했다.

옥천댁은 보은댁이 집적 끓인 첫국밥을 한 수저 먹고 나니까 온갖 설음이 하나로 뭉쳐서 가슴 저 밑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아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산모가 눈물을 흘리면 장차 아이가 눈물 흘릴 것이 많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억지로 눈물을 참고 첫국밥을 먹었다.

봐라, 내가 머라고 항겨. 동하 갸가 들례네 집에서 워쩔 수 읎이 있기는 하지만 속맘은 너한테 와 있능겨. 그랑께 그 때도 아를 쑥쑥 잘 낳으라고 그 비싼 잉어를 보냈지. 인재, 니가 아들까지 났응께 얼매 안 있으면 동하도 집으로 돌아 올껴. 그랑께 맘 푹 놓고 몸조리나 잘 햐. 동리사람들 한티는 손녀를 봤다고 소문을 낼 참이다. 할아부지 말씀이 그래야 명이 길다능겨. 그리 알고 이렛도막은 너도 아들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딸내미인 줄만 알고 있어야 하능겨.

하루아침에 천하를 얻은 사람의 표정이 그리할까. 보은댁은 해방이 된 이후 직접 논밭으로 나가서 일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잘 먹고 걱정 없이 사는 탓에 살결은 여느 동배의 여자들보다 젊어 보이기는 하다. 하지만 젊었을 때 땡볕에서 고생을 한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검게 그을린 얼굴은 밭고랑처럼 주름이 져 있다. 그 얼굴이 기쁨을 참지 못해서 황금처럼 번쩍번쩍 빛이 났다. 번쩍번쩍 빛이 나는 얼굴로 아직은 이름을 얻지 못한 아이를 기쁘다 못해 감격에 겨운 얼굴로 바라보면서 옥천댁에게 말했었다.

옥천댁 얼굴은 아이를 낳느라 좀 여윈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방안의 열기에 얼굴은 봉숭아 빛으로 물이 들어 있다.

방안이 더운데도 곤히 잠들어 있는 아기는 밤을 속울음을 울면서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만든 배냇저고리를 입고 곤히 잠들어 있다. 손가락으로 쿡 누르기만 하면 터져버릴 것 같은 여리고 투명한 살결은 너무 고와서 이 세상 사람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세상의 빛을 본지 이제 겨우 반나절이 지났음에도 눈썹하며, 오뚝한 콧날에 꾹 다문 입술은 얼굴이라도 비칠 것처럼 맑다.

니가 정녕 아들이여?

옥천댁은 배냇저고리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본다. 살결이 너무 부드럽고 여린가 하면 새의 가슴보다 따뜻하다. 햇볕 좋은 날을 골라서 무명을 빨고 말려서 다듬질을 하고, 다시 빨고 말려 다듬질을 해서 비단처럼 부드러워진 귀저기 안으로는 분명 익숙하지 않은 느낌으로 전해지는 돌출기가 있다. 너무 작아서 사람의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고추를 만지는 순간, 처음 이동하의 손길이 젖가슴을 스쳤을 때처럼 짜르르한 전율이 일어난다. 숨이 막히도록 벅차오르는 전율 뒤에 또 눈물이 맺히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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