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6장 자반 고등어

▲ <삽화=류상영>

딸들을 임신했을 때도 똑같이 입덧을 했었고, 출산을 할 때는 똑같이 생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겪었다. 그런데도 딸들의 잠지를 만져 보았을 때는 이처럼 가슴에서 넘쳐흐르는 전율을 느껴 보지 못했다는 것이 견딜 수 없는 미안함과 죄스러움으로 살아났기 때문이다.

문을 가린 이불호청 밖으로 해가 뜬지 오래 된 것 같은데도 밖은 괴이하리만큼 조용하다. 뒤안 감나무에는 오늘은 콩새들이, 까치들이 앉지 않기로 작정을 했는지 새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문 밖이 너무나 조용해서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꿈속에서 아이를 낳은 것은 아닌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다. 그러나 꿈은 아니다. 아이는 배냇저고리 소매 안에 숨긴 손을 가끔 움직이면서 조용하게 잠을 자고 있다.

잠을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에 박태수의 얼굴은 박태수를 닮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도 박태수의 얼굴이 가만히 겹쳐지는 것 같았다.

옥천댁은 아이의 얼굴에 가만히 겹쳐지는 박태수의 얼굴을 지우려 하지 않았다.

소나기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그날 밤 어떡하다 박태수의 품에 안기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보은댁이 그날 밤 암소가 송아지를 낳을 거라고 말했었다는 것. 그래서 박태수가 초저녁부터 행랑채에 머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송아지 나올 때까지 상규애비가 행랑채에서 있기로 했다. 그랑께 한 열한 시 쯤에 점순이 시켜서 탁주 한주전자 더 들여 보냐. 요새 송아지 끔도 비싼데 혼자 맹하니 지달릴라믄 지루할 거잖여."

옥천댁이 저녁 설거지를 끝낸 후였다. 보은댁이 도롱이를 쓰고 부엌 안으로 들어와서 말했다.

"알았구만유."

옥천댁은 보은댁이 쓰고 온 도롱이를 쓰고 외양간으로 갔다.

외양간 앞에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소나기가 내려 갈기고 있었다. 치마를 입은 장딴지를 흠뻑 적시는 빗속을 걸어서 외양간 앞으로 갔다. 외양간 구석에 매달린 남포등 불빛 밑에 암소가 누워있다. 암소는 진통이 시작되었는지 그렇지 않아도 왕방울만한 눈이 계란처럼 툭 불거져 있다. 진통의 고통을 참느라 개침을 질질 흘리며 씩씩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오늘 밤 안으로 송아지를 낳을 것처럼 보였다.

옥천댁은 남포등 불빛 아래 누워 있는 소가 부럽기만 했다. 소 값이 비싸기는 하다지만 하찮은 미물에 불과하다. 미물인 소도 때가 되면 교미를 하고 송아지를 낳는다. 하지만 옥천댁은 남편이 있으면서도 임신을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게 살아났다. 어쩌다 한번 합궁을 하는 날도 이동하는 늘 취해있었다.

가뭄에 바짝 마른 땅이 젖어 들기도 전에 이동하는 코를 골며 곯아떨어지기 일쑤다. 어제저녁만 해도 그렇다. 학산 면소재지에 땅을 구입하는 문제로 집에 들어 온 이동하는 술에 취해 있었다. 그것도 부족해서 집에 오면 이병호와 술을 더 마시고 안방으로 들어 왔다.

"당신은 위티게 생겨 먹은 여자가 서방님이 오셨는데도 반기는 기색이 읎어. 그랑께 내가 자꾸 발길이 멀어지는 거잖여."

"취하신 거 가튜. 얼릉 주무세유."

"남편 말 알기를 개 같이 알아……"

이동하는 다른 날처럼 반 억지로 옥천댁의 옷을 벗겼다. 그리고 옥천댁의 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혼자 만족을 하고 잠에 곯아 떨어졌다. 옥천댁은 옷을 입으며 허망한 눈빛으로 잠들어 있는 이동하를 바라보았다. 여름인데도 한겨울처럼 추운 가슴에 원망이 눈처럼 소복소복 쌓여가는 것 같았다.

으머머! 내가, 시방 먼 생각을 하거 있는 거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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