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6장 자반 고등어

▲ <삽화=류상영>

서른두 살의 옥천댁이다. 성적으로 한참 민감한 나이에 임신한 암소를 바라보며 남편과 합궁. 그것도 미완으로 끝난 합궁을 생각하는 사이에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슴이 울렁거리며 온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암 걱정 말고 핀히 주무셔유. 지가 한숨도 안자고 지킬딩께."

옥천댁은 언제 등 뒤에 박태수가 와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박태수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뒷걸음을 쳤다. 양력으로는 9월이지만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계절이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장대비에 밤바람은 서늘했다. 그런데도 장방이 차림에 적삼만 걸친 박태수의 몸은 사람의 몸이 아니라 황소처럼 우람했다. 그의 등 뒤로 마당에 장대처럼 내리꽂히는 빗소리는 빗소리가 아니었다. 이동하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근육질의 가슴을 가진 박태수의 목소리가 자신의 전신을 우악스럽게 쓸어내리는 심장이 뛰는 소리였다. 빗줄기 저 편으로 대청마루에 켜 있는 전등 불빛이 실루엣으로 희미하게 보였다. 불빛이 멀어 보여서 빗줄기가 대나무밭처럼 보였다. 아무도 없는 대나무밭에 박태수와 둘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은 더 심하게 뛰었다.

"수……수고 좀 해 줘유……"

옥천댁은 마음속으로 열병을 앓고 있던 남자와 외진 숲에서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입안의 침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끼며 도롱이를 뒤집어쓰고 빗속으로 뛰어 들었다.

아녀, 이건 아녀. 이러믄 안 되는 거여.

옥천댁은 방에 들어와서도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마치, 박태수와 입술이라도 맞춘 것처럼 온 몸이 덜덜 떨렸다. 이러면 안 된다고, 박태수는 그저 암소를 지켜보러온 동네 남정네 일 뿐이라고 애써 마음을 돌리려 해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방의 불을 끄고 어서 잠을 자야 더러운 생각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불을 끌 수가 없었다. 만약 방의 불을 끄면 행랑채에 있는 박태수가 그림자처럼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상상에서 벗어 날 수가 없었다.

그려, 그냥 암소만 보고 오는 거여. 그 이는 절대로 안 보고 암소만 보고 오는 거여.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밖에서는 여전히 억수처럼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옥천댁은 얼굴 가득한 눈물을 훔치며 일어섰다. 도둑처럼 문을 소리나지 않게 열었다. 사랑방에는 어둠이 깃들어 있다. 박태수의 부름이 없다면 아침까지 불이 켜지지 않을 사랑방이다.

옥천댁은 빗속을 뚫고 외양간 앞으로 갔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외양간에는 남포불만 외롭게 불을 밝히고 있다. 암소는 여전히 고통을 참지 못해 툭 불거진 눈으로 씩씩거리고 있다. 분명 산통을 참지 못해 씩씩거리고 있을 것이겠지만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언젠가 황소와 접을 붙일 때도 암소는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밤바람이 찬데……"

옥천댁은 갑자기 빗소리가 멎는 것을 느끼며 뒤로 돌아섰다. 박태수가 비를 가리며 뜨겁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다리의 힘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들창문 밖에서는 여전히 비바람이 흐느끼고 있었다. 옥천댁은 비바람이 흐느끼는 소리가 박태수의 목소리처럼 들려와서 귀를 틀어막았다. 귀를 틀어막을수록 비바람이 흐느끼는 소리는 더 크게 들려와서 나중에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꺽꺽 거리며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내 잘못이 아녀. 운명이 그릏게 짝을 지워 준 거여. 암, 절대로 내 잘못은 아녀.

옥천댁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점순이 대신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행랑채에 들어갔던 기억도 현실이 아닌 꿈처럼 살아났다. 분명하게 기억이 나는 것은 뜨거운 폭풍우가 온 몸을 감쌌던 시간들이 순식간으로 느껴지던 때 박태수가 한 말이었다.

"미안해유……이러고 싶지는 않았는데……워쩌다 봉께, 나도 모르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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