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6장 자반 고등어

▲ <삽화=류상영>

밖에는 여전히 마당을 뚫어 버릴 것처럼 소나기가 내리꽂히고 있었다. 옷을 입는 소리와 함께 컴컴한 구석에서 나지막하게 들려오던 박태수의 목소리가 가슴을 두들기는 것을 느꼈을 때서야 자신이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는 걸 알았다. 기억은 징검다리처럼 그 시점에서 또 끊어졌다. 기억이 이어지는 부분에는 그날 밤 황소가 집으로 들어오는 꿈이었다.

그려, 나야 하늘 아래 둘도 읎는 죄인이라 하지만. 이 아이는 먼 죄가 있겄어. 내 운명이 이 아이를 위해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일. 워틱하든 낳는 수벢에 읎겄지.

옥천댁은 한 달 후 태기를 느꼈다. 뱃속에 들어있는 아이가 이동하의 씨가 아니고 박태수의 씨라는 것을 아는 건 어렵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낙태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낙태를 할 방법도 없었지만 태몽을 돌이켜 보면 아들이 분명했다. 설령 아들이 아니더라도 아이를 낳아야겠다는 결심이 서는 순간 가슴 속에서 뜨거운 강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강줄기 따라 흐르는 강물은 너무 뜨거워서 온 몸이 불에 덴 듯 확확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 강물의 뜨거움의 온도는 지난 8년여 동안 빈방을 홀로 지키면서 그리움과 야속함이 뒤섞여 참을 수 없는 원통함으로 흐르는 눈물의 온도와 같았다.

"너, 요새 얼굴 꼴이 왜 그러냐. 또 아 가 슨거여?"

옥천댁은 둘째 셋째를 임신했을 때는 입덧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첫딸을 낳을 때 보다 더 심하게 입덧을 했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속이 울렁거리고 메스꺼워지는 것은 보통이다.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괜히 숨이 가쁘기도 했다. 무엇보다 평소에 좋아하던 된장찌개며, 콩자반이나, 된장으로 묻힌 나물 종류는 냄새도 맡을 수가 없었다. 정신적으로도 이동하에 대한 원망의 도가 지나쳐서 밤을 새워 속울음을 울 때가 많아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몸이 부쩍 여위기 시작했다. 그런 눈치를 챈 보은댁이 눈빛을 세우며 물었다.

"그른거 가텨유."

"쯔쯔, 그래도 동하가 서방 노릇은 하고 있는 모양이구먼. 그래, 이븐에는 아들 일 것 같은 예감이 드냐? 아들일 거라는 태몽을 꿨냐 이 말이여."

보은댁은 옥천댁의 임신 사실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서도 일말의 기대감이 솟는다는 얼굴로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었다.

"글씨유. 시방 생각해 봉께 우리집 대문이 활짝 열리믄서 황소가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는 꿈을 꾼 거 가튜. 황소도 보통 황소가 아니고 앞산만한 황소유. 어찌나 크든지 깜짝 놀래서 눈을 떠 봉께 꿈이지 뭐유."

"으메, 앞산만한 황소라믄 틀림읎는 아들이구만. 가만 있어봐.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녀. 나 시방 학산 댕겨 올팅께 어여 준비 좀 혀라. 얼릉!"

보은댁은 옥천댁이 황소를 꿈속에서 봤다는 말에 두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놀라며 외출준비를 서둘렀다.

"이븐에는 틀림읎는 아들이란다. 만약, 이븐에도 딸이라믄 손바닥에 장을 지진다고 했응께틀림읎을 거여. 그랑께 앞으로는 심든 일은 일절하지 말고 점순이를 시키도록 혀라. 알겄지?"

보은댁은 단걸음에 학산에 있는 꼬막네한테 가서 점을 쳤다. 오는 길에 빈손으로 오지 않고 면사무소 소사로 근무하는 박생수를 시켜서 흑염소를 한 마리 끌고 왔다. 박평래를 시켜서 염소를 잡게 하는 한편,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는 옥천댁을 억지로 방으로 끌고 들어가서 이부자리를 펴주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직 괜찮아유. 아를 한두 번 베 보는 것도 아닝께 너무 걱정하지 마셔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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