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끝났다. 하지만…

축제는 끝이 났다. 축제가 끝난 광장에 남는 것은 철거를 하지 않은 애드벌룬과 야시장부스 들 뿐이다. 축제의 마지막 팡파르를 울렸던 불꽃놀이는 흔적도 없는데 광장에는 온갖 쓰레기가 축축하게 이슬에 젖어있다. 쓰레기만 노숙을 한 것은 아니다. 지난 밤 '추풍령 가요제'에 구경을 왔던 칠순 노인의 쓸쓸한 비애도 공설운동장의 무대 앞에서 실망감을 품에 안고 노숙을 했다.

원론으로 돌아가 보자. 축제의 본질은 무엇이고, 축제를 개최하는 목적은 무엇이며, 축제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은 얼마인가 하는 탁상공론적인 문제는 접어 두고 '추풍령가요제'한 가지만 국한해서 언급을 해 보자. 우리말에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난계축제의 핵이라 할 수 있는(이 얼마나 쓸쓸한 난제인가, 난계축제에서 당연히 국악이 핵이 돼 하는데) '추풍령가요제'를 보면 반세기에서 8년이 부족한 세월 동안 이어져 온 '난계축제'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구름도 울고가고 바람도 쉬어 간다는 '추풍령'이라는 대중가요가 있다. 지금은 원로가수에 속하는 남상규가 불러서 추풍령을 전국적인 명소로 알리는데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 노래 때문에 '추풍령가요제'를 개최하게 된 것 같기는 한데 행사를 진행하는 걸 보면 그렇지는 않다. 우선 가요제가 진행되기 전에 심사의원 두 분이 무대로 올라왔다.

군민들은 무대에 올라선 심사의원들이 지금부터 우리가 공정한 심사를 하겠노라고 선포를 하는 줄 알았겠지만 금방 착각이었다는 걸 알아차린다. 심사를 하는데 지대한 공이 있으므로 감사패를 증정한다는 사회자의 멘트가 공설운동장의 밤하늘을 채워 버렸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은 무료로 심사를 해 주는가? 심사료를 받고 심사를 하러 내려 온 작곡가들이다. 혹자들은 이런 무격식행위를 두고 '웃기는 짬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무대 앞에는 수많은 관람객들이 앉아 있다. 지난 나흘 동안 구경을 오거나 참관을 했던 사람들 모두를 합친 숫자보다 더 많은 구경꾼들이 무대를 주시하고 있다. 이래서 난계 축제의 핵은 '추풍령가요제'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의자에는 행여 자리가 없을 까봐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구경을 온 관람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 대부분 연세가 지긋하게 드신 노인분들이다. 한마디로 작심을 하고 구경을 온 노인들은 가요제의 열기가 밤하늘을 찌를수록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신다. 구경꾼들의 70%이상을 차지하는 노인을 위한 배려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명색이 난계박연의 뜻을 기리기 위한 축제다. 전통적인 국악과 코드가 조금 빗나가기는 했지만 민요가수 서너 명 쯤은 초청을 했어야 한다. 70%보다 적은 30%의 관객을 위한 가수들 중 한 명의 케라만 해도 민요 가수 몇 명은 부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축제를 관할하고 기획하는 군청에는 노인들이 근무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노인들은 운동장에 앉아서 현란한 대중음악소리에 끄덕끄덕 졸고 계신다. 축제(祝祭)가 아닌 축제(築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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