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7장 가을 이야기

▲ <삽화=류상영>

집 앞에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들판을 쳐다보던 해룡네가 설사병 걸린 사람 뒷간 찾는 걸음으로 달려와서 승우의 얼굴을 바라보며 까꿍까꿍 거렸다.

"참말로 똑똑하게 생겼어. 너무 똑똑하게 생겨서 지 성을 올라 타겄는 걸?"

"지, 성 누구?"

철용네의 말에 해룡네가 뜬금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뉘긴 뉘여. 반굉일마다 집에 오는 승철이 있잖여."

철용네는 해룡네를 바라보지 않고 승우의 모자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혀로 맹꽁이가 우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승우가 방긋 웃는다.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손가락으로 볼을 살짝 누른다.

"난 또 뭐라고, 승철이는 인제 물 건너갔지 뭐. 이 도령님이 태어나기 전에 면장님 손자였지 시방도 손잔가."

해룡네가 촐랑거리는 말에 먼 시선으로 들판을 바라보며 자랑스럽게 서 있던 보은댁이 홱 돌아다본다. 승우의 모자를 쓰다듬고 있던 철용네도 앗 뜨거 하는 얼굴로 해룡네를 바라봤다. 망연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순배영감과 변쌍출도 이기 먼 소리여, 하는 얼굴로 보은댁을 바라본다.

"어이구, 요 이쁜 도령님 및 년만 일찍 나왔어도 작은마님이 맘고생을 들 하셨을 거인데, 머 하시다가 이릏게 늦게 나오셨댜."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무겁게 굳어 있는데 정작 해룡네의 얼굴에서는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있었다. 연신 까꿍까꿍 거리면서 동그란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 승우를 웃기려고 알랑거렸다.

"아야! 할 말이 있으믄 입으로 하지, 왜 사람 방딩이를 꼬집고 야단이댜."

보은댁의 얼굴이 무겁다 못해 차갑게 굳어지고 있는 모습을 본 철용네가 더 이상 가만히 있지 못하고 해룡네의 얼굴을 꼬집었다.

"해룡네는 먼 말을 그 따위로 한댜?"

보은댁은 괜히 승우를 업고 나왔다고 후회를 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집으로 들어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해룡네를 노려보았다.

"왜유? 지가 먼 틀린 말 했슈?"

뒤늦게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 해룡네가 철용네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이가 즘심 먹을 때가 지났는데도 왜 연즉 안 오능겨?"

철용네는 해룡네가 묻는 말에 뭐라고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바쁜 사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기 집 마당 쪽으로 바쁘게 걸어갔다.

"말이믄 다 하능겨? 찢어진 거이 주둥이라고 그릏게 함부러 놀려도 되냐 이거여."

"마님, 지가 멀 잘못했남유?"

보은댁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본 해룡네는 죽을죄를 지었다는 얼굴이면서도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는 얼굴이다.

"됐네. 이 사람아. 지 분수도 모르고 처 쥐끼는 사람하고 입을 섞은 내가 잘못이지."

보은댁은 해룡네 같은 것하고는 상대하기도 싫다는 얼굴로 차갑게 돌아섰다. 포대기로 엎은 승우의 엉덩이를 위로 단촐하게 치켜 올리며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별 인간 같지도 않은 것 한티 우세를 당했구먼. 뭐? 및 년만 일찍 나왔어도 작은마님이맘고생을 들 하였을 거인데. 하여튼 읎는 것들은 자나 깨나 눈만 뜨면 그 생각 벢에 읎다니께. 그 지랄로 엉뚱한 생각만 하고 있응께 사는 것들이 허구헌날 그 지랄이지…….

보은댁은 총총 걸음으로 걸어가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뒤로 돌아서서 둥구나무 밑을 바라본다. 해룡네가 순배영감하고, 변쌍출 앞에서 손짓발짓을 해 가면서 뭐라고 떠들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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