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7장 가을 이야기

▲ <삽화=류상영>

저 년이 시방 머라고 주딩이를 찢고 있는 거여. 아……아녀……똥이 무서워서 참나, 드러워서 참는 거지. 퇘! 재수가 읎을라고 항께……

보은댁은 더 이상 상종할 인간이 못 된다는 생각에 홱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

매를 맞아도 잘못한 이유를 알고 맞으면 덜 아픈 법이다.

해룡네는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보은댁에게 잘못한 말이 없었다. 순배영감과 변쌍출에게도 내가 잘못한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입게 거품을 일어나도록 물어 보아도 대답은 하지 않고 딴전만 피우고 있는 것이 답답했다.

"내가 술장사나 하고 있다고 사람 우습게 본 것이 틀림읎어. 지들이 배뚜드리며 산지가 을매나 됐다고. 솔직히 말해서 왜정 때만 해도 저나 나나 개찐 또찐이었지 머. 그런 인간들이 세상이 바뀌어서 먹고살만 하다고 암 잘못도 읎는데 주둥이를 함부로 놀린다는 둥, 개 소리를 하고 지랄여. 지랄이."

해룡네는 순배영감과 변쌍출마저 상대를 해주지 않자 면장댁을 바라보면서 입에 거품을 물었다.

"해룡네 그만햐."

순배영감이 해룡네의 입이 갈수록 거칠어지는 것이 민망하다는 얼굴로 점잖게 말했다.

"왜유, 냅떠유. 임금님도 읎는데서는 욕을 한다는데 해룡네도 먼가 서운한 기 있응께 저러겠지."

변쌍출은 재미있다는 얼굴로 해룡네를 향하여 돌아앉았다. 양반다리를 하고 주머니에서 쌈지를 꺼내 곰방대에 담배를 담으면서 해죽이 웃는다.

"그라고 내가 틀린 말 했슈? 자고로 입은 삐뚤어 졌어도 말은 똑바로 하라고 했슈. 터진 입잉께 한마디 더 하자믄 면장님 승질에 들례한티서 읃은 자식을 장손자로 받아 들이겄슈? 아나 쑥떡이유. 피로 말하자믄 똑같이 부면장님 피를 이어받기는 했지만 승철이는 그 머셔, 피가 짬뽕아뉴. 허지만 이븐에 난 아는 옥천댁이 났응께 진짜잖유. 그람 나래도 둘째를 장손자로 받아들이지, 피가 반천 벢에 섞이지 않은 첫 찌를 장자로 삼겄슈. 더구나 승철이를 낳은 들례라는 여자는 근본도 모르는 여자 아뉴, 누가 그런 여자 몸에서 나온 여자를 장손자로 삼겄슈. 내 말이 틀렸으믄 어디 한븐 말씀들 해 보셔유."

보은댁은 이미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린다는 얼굴로 보은댁을 쏘아붙이던 해룡네가 순배영감과 변쌍출에게 침을 튀기며 물었다.

"요새는 밤이 부쩍 짧아 진 거 가텨유."

"처서 지난지가 은젠데, 오늘이 음력으로 스무 닷세여."

"그람, 처서가 지난지 꼭 한 달하고 이틀이 지났구먼유."

변쌍출과 순배영감도 이병호나 보은댁을 고은 시선으로 보지는 않았다. 욕을 하려고 치자면 해룡네 못지않게 모진 욕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가 해룡네다. 해룡네 앞에서 섣부르게 혀를 놀렸다가는 언제 피 바가지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대꾸를 안 하고 엉뚱한 소리만 주고받았다.

"먼 일이 있슈?"

바람에 둥구나무 가지가 느릿하게 흔들렸다. 때 이르게 노랗게 변한 낙엽 몇 잎에 하늘거리며 떨어져 내린다. 그 밑으로 황인술이 다가와서 해룡네를 흘끗 쳐다보고 난 후에 순배영감에게 물었다.

"암것도 아녀. 읍내라도 나가는 질여?"

황인술이 낡기는 했지만 양복바지에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고 변쌍출이 물었다.

"읍내는유. 면사무소 강 서기하고 뇡협조합 최 서기가 출장 나온다고 해서 나와 보는 질유. 그란디해룡네는 왜 얼굴이 복어새끼마냥 퉁퉁부은 얼굴로 가능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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