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수에 따라 검(劍)·도(刀)로 나누어 사용

▲ 백제시대 환두대고 복원모습.

칼이란 주로 근거리 전투에서 사용되는 짧은 병기를 대표하며, 베고 찌르는 기능을 가졌다.

칼은 활과 더불어 사용기간이 가장 긴 무기에 속하는데, 돌에서 청동으로, 철이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재료를 바꾸어 철로 만들게 되었다.

초기에 보이는 철검은 검의 몸과 손잡이가 모두 짧은 형태였고, 세형동검과 함께 출토되곤 한다. 길이가 짧은 검에 속하는 이들 철검은 검 몸의 생김새, 손잡이의 부착방법, 칼집의 모양 등에서 세형동검과 다를 바가 없어 종래의 동검을 모델로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철검이 용도와 상징성에서 동검과 차별화 되는 것은 검 몸 길이가 50cm 이상의 기다란 검이 등장하면서부터다. 형태의 변화가 아닌 검 몸을 길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철을 만들고 다루는 기술이 그만큼 발달하여 강철을 만들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칼은 시대에 따라 그 시대가 요구하는 기능에 적합한 여러 가지 형태의 도검이 만들어 졌고, 같은 형태의 도검이라도 시대에 따라 용도에서 차이를 보인다.

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한 가지는 검(劍)과 다른 한 가지는 도(刀)이다. 이 두 가지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탁월한 기능을 자랑하였는데, 검(劍)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양쪽에 날(刃部)이 있는 것을 말하며, 도(刀)는 한쪽에 날이 있는 것을 말한다.

전쟁터에서는 도와 검이 함께 사용되었으나, 사용에 있어서 도가 검에 비해 우세를 보이게 된 것은 전투 무기로서의 효용성 때문이다.

검은 베고 찌르는 두 가지 기능을 모두 지녀 무기로서의 효용이 더 많을 듯하지만, 등대를 곧바로 세우고 검신 양면을 대칭적으로 연마하여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또한 찌르는 기능에서는 창에 뒤지며, 견고성에서도 한쪽 면을 두껍게 하여 등을 만든 도에 비해 뒤지면서도 더 많은 수공을 필요로 하였다는 점에서 비효율적이었다.

특히 전쟁의 양상이 병력을 대규모로 동원하는 추세로 나아감에 따라 대량생산할 수 있는 도가 선호 되었다.

또한 전쟁터에서 기마(騎馬)가 도입되면서부터는 말을 탄 채 내달아 적을 지나치면서 도로 내리쳐 베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전투용으로 사용되면서 도에는 본래 없었던 칼집을 갖추게 되었다. 이로써 도를 패용하기 편리해 졌으며, 칼 몸을 보호 할 수도 있었다.

칼은 뭉툭한 부분인 칼등과 사물을 베는 부분인 칼날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두 부분의 조직은 서로 다르게 만들어진다. 만약 칼로 단단한 사물을 내려칠 때 칼 전체가 단단하기만 하면 그 칼은 그것을 베어 버리거나, 아니면 부러질 것이다.

그러나 칼날 부분이 매우 단단한 조직(마르텐사이트)으로 되어 있고, 그 뒤를 받쳐주는 칼등 부분은 그보다 무른 조직(베이나이트)으로 만든 칼로 내려친다고 생각해 보자! 칼등은 충격을 흡수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 칼은 부러지지 않게 될 것이다.

이렇게 칼등과 칼날의 단단함이 다른 조직으로 된 칼을 만들기 위해 우리 선조들은 칼을 만들 때 칼날 부분에 특별히 수십, 수백 차례의 열처리를 통한 열간 가공과 담금질을 하였다.

이러한 과학기술로 만들어진 칼은 강한 군대를 만드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으며, 나라를 크게 일으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 윤용현 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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