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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과 공존·프랑스적 가치모순적 양면
황혜영  |  news@ccdail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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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9.24  19:4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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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네딕트가 일본인 사고의 틀을 '국화'와 '칼'이라는 극히 대조적인 두 개념으로 규정한 것이나 인간중심의 헬레니즘과 신 중심의 헤브라이즘이 서양 정신의 두 원류를 이루는 것처럼, 모순적인 양면이 함께 한 문화를 역동적으로 이끌어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프랑스적 가치도 극명한 양면들로 나타난다. 프랑스인에게 종교를 물으면 4명 중 3명은 가톨릭이라고 답한다. 그런데 막상 미사에 참석하는 경우는 10% 미만이다. 그것은 신앙생활과 별도로 프랑스인의 사고 깊숙이 가톨릭 정신이 스며 있음을 말해준다. 프랑스식 이름만 하더라도 거의 대부분 가톨릭 성자, 성녀의 이름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따라다니는 이름 속에 이미 가톨릭 성인의 자취가 녹아 있는 것이다. 국경일도 대부분 가톨릭 축일이며, 여가도 부활절방학, 만성절방학, 성탄절 방학 등 가톨릭 전통을 반영한다. 도시구획과 건축에도 종교적 영향이 역력하여 대도시의 중심에는 대사원이 자리 잡고 있다.

『노트르담의 곱추』로 잘 알려진 파리 대사원도 파리 시내를 관통하는 세느강의 가운데 파리 문명의 발생지인 시테 섬 중심에 서 있다. 크고 작은 마을 중심의 예배당들도 일상 속의 가톨릭 가치를 보여준다.

하지만 프랑스는 종교를 교육과 정치에 결부시키는 것을 철저히 배격한다. 대통령이 성서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하는 미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정치에서 종교를 앞세우는 것을 볼 수 없다. 학교에서도 특정 종교의 내용을 가르치거나 옹호할 수 없다. '라이시테'라고 하는 비종교성의 원칙이 오랜 가톨릭 전통과 공존하며 프랑스적 삶을 이끈다.

프랑스 사람들은 또 과거의 것에 대한 애착과 존중심이 유별나다. 파리 도시 경관만 보더라도 거의 비슷비슷한 5층 내외의 파리의 아파트는 지은 지 100년은 기본이고, 200년이 넘기도 하며 주인이라도 건물 외관을 함부로 바꾸지 못하도록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더 오래 옛것을 지킬 것인지 파리 시민들은 함께 고심한다.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 하더라도 오래된 가구나 골동품 등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며, 6만 명이 넘는 아마추어 족보 연구가들이 자신의 조상을 찾고 있다. 세느강에는 '부끼니스트'라는 고서적상인들이 접을 수 있는 작은 철 상자 같은 것을 강둑에 고정해두고 날씨가 좋을 때면 고서적이나 그림들을 펼쳐 놓고 행인들의 발길을 끈다.

그와 동시에 프랑스인은 새로운 것을 실험하고 포용하여 전통과의 공존과 조화를 추구한다. 1989년 미테랑 대통령 당시 프랑스 대혁명 200주년을 기념하여 시행한 대건축사업 그랑 프로제grands projets는 옛 건축물들을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도시 경관을 새롭게 탈바꿈시켰다.

루브르 박물관 진입로는 거대한 유리 피라미드로 만들어 옛 건물에 새 건축물을 병치시켰다. 투명한 유리 건축에는 건물이 비쳐 보여 새것에 의해 옛것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이 아니라 대비를 통해 오히려 더 부각되게 하였다. 샹젤리제대로 끝의 개선문 너머 외곽 라데팡스에는 거대한 현대식 아치 건물을 만들어 튈르리 정원의 카루셀 개선문에서부터 일직선상으로 신구 세 개의 개선문이 나란히 관통하게 만들었다.

골조와 설비배관을 외부에 노출시켜 만든 퐁피두센터는 20세기 현대 미술의 상설전시관이자 영화, 공연, 도서관이 갖춰진 문화예술 공간으로 침체된 그 지역 상권을 부활시켜 놓았다. 오르세 역은 인상파를 비롯한 19세기 예술작품의 박물관으로 탈바꿈되었고, 대혁명으로 무너진 바스티유 감옥 터에 세운 현대적 바스티유 오페라는 19세기 말 샤를 가르니에가 설계한 기존 오페라 극장과 대조와 균형을 이룬다. 과거 존중과 개혁성, 또 다른 모순적 프랑스적 가치다.


▲ 황혜영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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