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개각에 따른 고위공직자 인사청문은 '위장전입 청문회'였다. 물론 예전 청문회처럼 부동산 투기, 논문 이중 게재, 소득 탈루, 이중국적 같은 별로 향기스럽지 않은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위장전입 여파가 더 컸고 그만큼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세월이 변함에 따라 인사청문회의 주된 대상도 바뀐 건지 지난날 청문회와는 조금 달랐다.

그러나 더 변한 게 있다. 청문회에서 불거져 나온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그게 딴판이 됐다.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위장전입의 경우 공직 후보자들의 시인이 빨랐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세태를 따르다보니 그렇게 됐다"는 뉘앙스를 짙게 풍겼다.

드러내다시피 한 시인

위장전입은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고위공직자 후보에게는 치명타였다. 누구보다도 도덕적이어야 하고, 그 어떤 사람보다 법을 지켜야 하는 고위공직자가 법을 어겨가며 사는 곳과 주민등록이 다르다는 건 비난받아 마땅했고 집중적인 공격의 대상이 됐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02년 여성으로서는 처음 국무총리 후보로 내정된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현 민주당 최고위원)은 청문회 도중 3차례나 위장전입 한 사실이 드러나 낙마했다.

이 한 방으로 총장의 명예도 잃었고, 개인이 그동안 쌓아 온 신뢰와 인적자산 모두 날라가다시피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장대환 국무총리 내정자, 주양자 보건복지부 장관도 그랬고 노무현 정부 때 이헌재 경제부총리, 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도 위장전입의 늪을 빠져 나오지 못했다.

그런데 어찌 된 건지 이번 청문회에서는 위장전입을 놓고 청문을 하는 국회의원들은 집요한 반면 청문을 받는 공직자 후보들은 별로 숨기지도 않는 분위기다. 별의별 이유를 다 대며 해명하던 과거 청문회가 아니었다.

살다보니 그렇게 됐고, 특히 내자식을 조금 더 좋은 곳에서, 조금 더 나은 학교에 보내려다보니 그렇게 됐다는 변명을 풀어놓았다.

마치 우리사회의 가장 큰 관심거리인 교육에 관한 한 대부분 국민들이 너그럽고, 다른건 몰라도 자식교육에 관한 거라면 위장전입의 허물을 덮어주리라 내심 기대하는 눈치로 비쳐지기까지 했다.


고위직의 필수가 된 세태

이렇게되다보니 고위공직자에게 위장전입은 하나의 필수가 됐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 청문회 내내 새 나왔다.

한 술 더 떠 자녀교육을 위해 위장전입 한 번 못해 본 사람은 학부모 축에도 끼지 못할 것 같은 우스운 상황이 연출됐다.

자연 어떤 게 청문회를 통과하는 기준이냐는 따가운 지적이 제기됐다. 하나의 사안에 대해서는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목소리다. 그래서 야당은 연일 후보자의 자진사퇴, 용퇴를 촉구하고 있다.

우리지역에서도 위장전입은 화젯거리였다. 물론 충북의 경우 고등학교가 단일학군이다보니 '좋은'학교 보내려고 주민등록을 가짜로 옮길 필요까지 없지만, 만일 사는 곳에 따라 진학할 수 있는 학교가 다르다고 하면 어찌될까가 삼삼오오 모이는 곳에서의 얘깃거리였다.

고위공직자는 그 자리에 맞는 '그릇'이어야 한다. 내 한 몸의 안위만 생각하고 "나는 '바담 풍(風)' 해도 너는 '바람 풍'하라"는 식으로 자신의 허물은 덮고, 남의 허물만 문제시 삼는 인사는 고위공직자 대열에서 빠져야 하고 기용되지 말아야 한다. 위장전입을 왜 했느냐는 지탄에 잠시 미안함만 가지면 없던 일로 돼버리는 그런 자리라면 모르겠다.

▲ 박광호
부국장·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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