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힘으로 무거운 물건을 움직이는 도구

▲ 수원화성성역의궤속의 녹로.

녹로는 토목이나 건축 공사에서 도르래(滑車)를 이용하여 돌이나 큰 나무와 같이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는데 쓰이던 건축 도구로 조선 후기에 성을 쌓거나 큰집을 지을 때 사용하였다.

이 녹로는 예전부터 있었던 장대 끝에 도르래를 달아 깃발을 매다는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각목으로 네모난 틀을 만들고 틀의 앞쪽에서 긴 지주 구실을 하는 2개의 장대(雙竿)를 비스듬히 세운 다음 장대 꼭대기에는 도르래를 달고 나무틀의 뒤쪽에는 얼레를 설치하였다. 동아줄을 얼레와 활차에 연결하고 줄의 반대쪽에 들어올릴 물건을 달아맨 뒤, 얼레를 돌려 줄을 감으면서 물건을 들어올리도록 고안한 것이다.

1796년(정조 20) 화성(華城: 수원성)을 쌓을 때에는 거중기와 더불어 두 개의 녹로를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수원성 건축 일지인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따르면 틀의 크기는 세로 15척(460㎝, 황종척 30.65㎝), 높이 10척(300㎝)이고 장대의 길이가 35척(1100㎝)으로 여덟 사람이 둘로 나뉘어 얼레를 좌우에서 돌려 물건을 올리고, 적당한 높이에 올라가면 짐을 묶은 곳에 따로 묶은 밧줄을 잡아당겨서 원하는 자리에 옮긴 다음 다시 얼레를 늦추어 물건을 내린다고 하였다.

거중기와 녹로를 비교해 보면 거중기는 움직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하여 적은 노동력으로 작용하는 힘의 방향을 바꾸고 편리한 작업환경으로 무거운 돌을 효율적으로 운반하였지만 낮은 곳의 돌 등을 쌓을 때만 사용하였고, 녹로는 고정도르래를 이용하여 힘의 작용 방향을 바꾸어 작업을 효율적으로 한 역할을 이용한 것으로 물건을 높은 곳에 운반할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녹로는 적은 힘으로 무거운 물건을 효과적으로 들어 얼릴 수 있는 도구로써, 지금의 크레인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녹로는 1803년(순조 3) 창덕궁 인정전 재건 공사 때, 1857년(철종 8) 인정전 중수공사 때에도 사용하였다.

▲ 윤용현 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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