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 문제 극복해야

얼마 전 필자는 대한전문건설협회 중앙회장 자격으로 한화그룹이 주최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및 공정거래 협약식'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한화그룹은 100억원 규모의 상생협력펀드를 조성하고 하도급대금도 100% 현금으로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한화그룹 뿐 아니라 주요 대기업들도 이와 유사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이 최근 주요 100대 기업 중 38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올해 대기업들의 상생협력 지원금액은 1개사당 평균 1,665억원으로 지난해 보다 33%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에 응하지 않은 다른 대기업들을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와 같이 대?중소기업간 '상생(相生)'하자는 분위기가 활발하게 형성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한층 성숙되어 가는 모습이라 반갑기 그지없다. 대기업이 협력업체를 억압과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사업 파트너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로의 장점을 살려 시너지 효과를 내자는 인식의 전환은 산업과 국가경쟁력을 제고하는 첩경이 될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런 가시적인 행사와 거창한 계획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현실적 문제도 적지 않다. 필자는 중소 건설업체들로 구성된 단체를 책임지고 있다. 얼마 전 최대의 명절인 추석에 자금 수요가 많아지자 대형 건설업체들은 현금 대신 장기어음을 지급하는 일이 많아졌다. 하도급업체들은 적지 않은 어음할인료를 부담하고서야 급한 직원들의 임금과 자재대금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대중소기업간 진정한 상생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일까?

음양오행학적으로 '상생'의 반대적 의미는 '상극'이다. 지금 우리가 대중소기업간 상생을 이루고자 한다는 것은 역으로 상극을 극복하자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음양오행학적으로 '상생'과 '상극'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접근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 아닐까. 오행은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이다. 상생은 목화토금수의 오기(五氣)가 차례차례 상대를 살려나가는 플러스 관계를 말한다. 나무(木)와 불(火)의 관계를 살펴보면, 불이 나무를 태우며 살아날 때 불에게 나무는 음양오행학적으로 상생관계라고 한 것이다. 반대로 물(水)과 불(火) 같이 서로 같이 하기 힘든 관계도 있다. 이것을 '상극(相剋)'이라고 한다. 상극은 마이너스의 악순환을 낳는 관계인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상극'도 좋지 않지만 '상생'도 결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상생관계인 불과 나무의 관계에서 불은 나무의 기운을 빼앗아 갈 뿐 나무에게 아무것도 주는 것이 없는 일방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기서 현재 우리 사회에 무르익고 있는 상생의 분위기를 과소평가하거나 그 진실성을 폄훼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대중소기업이 서로 협력해 도움이 되는 진정한 '상생'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가를 찾고자 함이다.

앞서 말했듯 상극은 나쁘고 상생은 좋다고 일률적으로 말 할 수는 없다. 상생은 그 기운이 일어나도록 도와주는 것이고, 상극은 억제하고 누르는 것인데, 눌러줄 것은 눌러주고 일으킬 것은 일으켜야 원활하게 오행의 기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은 상극관계가 상생관계로 전화되는 새로운 순간을 '개벽(開闢)'이라고 불렀다. 지금 우리에게 당장 시급한 것은 입으로만 '상생'을 외칠게 아니라 대중소기업간 '상극'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정신적 개벽''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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