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7장 가을 이야기
| ▲ <삽화=류상영> |
김춘섭은 입안이 불이 붙는 것처럼 매웠지만 인상을 쓰지 않았다. 입안이 매운 것 보다 더 황당한 일이 있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머셔, 또 일본 놈들이 정권이라도 잡았는감?"
"그게 아녀. 지난 이 월 달에 새 농지개혁법이 국회에서 통과돼서 오늘부터 시행이 된다는 거여."
"농지개혁법이라니? 그람 우리나라도 북한츠름 논을 공짜로 나눠 준다는 거여?"
황인술이 제법 유식한 척 한 얼굴로 물었다.
"거긴 공산당이라 김일성 맘대로겠지만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잖여. 그래서 그 머여, 민주주의 국가라서 합법적인 측면으루다 농지개혁을 하기로 했다는 거여."
"합법적이라면 돈을 주고 땅을 사라는 말인가?"
"그려!"
김춘섭은 박태수가 묻는 말에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다는 얼굴로 스스로 막걸리를 따르며 짤막하게 대답했다.
"이 사람 면에 가서 먼 말을 듣기는 들었는데 정확히 못 들었는개비구먼. 돈이 있으믄 누가 땅을 못 사나. 해룡이도 돈 만 있으믄 지주가 될 수 있지. 야! 해룡아, 너 돈 모아 논 거 있음은 땅이나 및 마지기 사라. 농사짓는 거는 내가 책음지고 질팅께."
황인술은 김춘섭의 말이 예사롭게 들려오지 않았다. 김춘섭이 흥분을 갈아 앉히도록 슬쩍 농담을 던졌다.
"나 백 원짜리 있어. 이거 봐."
방 문지방에 앉아서 다리를 흔들고 있던 해룡이 깨끼적삼 주머니에서 조선은행권 10원짜리 지폐를 흔들어 보였다.
"어이구, 십 원짜리구먼. 그 돈이든 논 열 마지기는 사고도 남겄다."
"시방 농담 할 때가 아녀. 오늘부터 지주가 소작을 내 준 논은 무조건 죄다 소작인에게 넘겨야 한다능겨. 무조건으루다 말여."
김춘섭이 두 번째 막걸리잔도 단숨에 비워버리고 나서 말했다.
"그기 무슨 말여. 소 질가믄서 똥 내갈기는 것 츠름 뜨문뜨문 말하지 말고 찬찬히 첨부터 끝까지 말해 봐."
"글씨, 오늘 이발소에 갔다가 면서기 들한티 들은 야긴데……"
김춘섭은 너무 기가 막히고 황당하다 못해 또 말이 막혔다. 두 눈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황인술을 향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막걸리 마시듯 숨을 꿀꺽 들이마셨다.
"이발소에 간 냥반이 우째 이발은 안했을까?"
해룡네가 뜨거운 물에 대친 생두부를 접시에 담아서 내 놓으며 끼어들었다.
"해룡네는 가만 있어봐. 시방 춘셉이 야기를 들어 봉께 보통 사건이 아닌 거 같구먼. 그래서?"
황인술이 해룡네를 옆으로 밀어내고 김춘섭 앞으로 바짝 당겨 앉아서 김춘섭에게 재촉을 했다.
김춘섭은 연신 마른 침을 꿀꺽꿀꺽 삼키면서 이발소에서 면서기들한테 들었다는 소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소작인들이 부치는 땅은 무조건 소작인들 한티 줘야 한드능겨. 그릏다고 끝도 밑도 없이 다 주는 거시 아니고, 한 사람한티 열 마지기 이하로 짤라서 줘야 한다능겨. 아까 누군가 말한 것츠름 이북처럼 공짜로 주는 기 아니고, 논 값은 한해 소출되는 곡식의 한배 반을 줘야 한다고 하드만. 그랑께 한마지기에서 한해에 나락이 넉 섬이 나오믄 한 배 반잉께, 여섯 섬으로 쳐서 줘야 한다는 거지."
"그람, 그 머셔. 한 마지기에 여섯 섬이믄 이기 워치게 되는 거여 대체?"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