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부, 쿠처의 구자고성과 청진사

▲ 사진 1 페허가 된 쿠처의 구자고성 모습 사진 2 구자고성을 알리는 안내판 사진 3 쿠처 대사원(청진사)의 모습 사진 4 쿠처사원 사진 5 정갈하고 아담한 쿠처 대사원 사진 6 쿠처 대사원 앞, 마을사람들의 한가한 저녁시간모습 사진 7 퇴근 무렵의 쿠처 대사원 주변 모습, 조용하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스바시 고성과 천산신비대협곡, 키질석굴을 만나보고 쿠처 시가지로 돌아오며 구자고성을 찾아가고 있다. 현재의 쿠처 시가지는 1957년 키지르강의 대홍수로 옛 시가지가 황폐화 되어 동쪽의 고지대에 신시가지를 조성하였다고 하며 서쪽은 구시가지로 위구르족이 주로 거주하고 동쪽 신시가지 한족들이 몰려 산다고 한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지대 도로 옆을 보니 황토 흙으로 담장을 쌓으려다만 흙더미처럼 잡초사이에 머지않아 사라질 것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는 구자고성의 성벽 부스러기가 있다. 주변은 쓰레기장인지 아이들의 놀이터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방치되고 있는 모습이 썰렁함 그 자체이다. 흙으로 쌓은 성벽이 1300년의 세월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도로를 사이에 두고 300~400m 정도 남아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썰렁함이 더하다.
모든 문화재를 다 복원하고 정비하여 보존 할 수는 없겠지만 도시의 특성을 보여주는 주요 문화재를 복원 보존하여 지역의 역사와 문화. 정신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 역시 많은 성곽 유물들이 있으나 제대로 관리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청주지역만 하여도 갈대가 아름다운 미호천변 들판에 정북토성이 2000여년의 세월을 이겨내고 있고, 우암산 토성, 부모산 토성 등이 있으나 정북토성은 최근 정비 중이고, 우암산과 부모산 토성은 등산로가 되어 사람들의 발길 아래 놓여 있다. 상당산성만 옛 모습을 그런대로 지키며 성벽만 복원되고 있는 중이다. 더구나 아름답다고 하던 청주읍성은 일제강점기 일인들에 의하여 파괴되어 사라지고 없으니 일부만이라도 복원을 하여 청주의 옛 모습을 살려보면 어떨까?
부모산성과 청주읍성을 복원하여 상당산성과 이어지며 역사의 향기를 지닌 성곽의 도시 청주로 다시 태어날 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는 진정한 모습의 천년고도 청주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쿠처의 성벽도 민족간 세력싸움에 밀리고 세월의 풍화 속에 온전하게 남아있기가 어려웠을 터이니 무엇을 탓하랴 마는 아쉬움과 반가움이 다가오는 것은 고선지장군의 흔적이 그나마 남아 있는 곳이라는 이유인 것 같다. 성벽위로 누각이 있고 그 옆에 고선지장군의 거대한 동상과함께 장군의 전력을 소개하는 커다란 안내판이 있기를 바라는 생각들이 고성의 황폐한 모습을 더욱 쓸쓸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이곳에 온 이유가 실크로드의 흔적과 고선지 장군의 발자취를 조금이라도 찾아볼 수 있을까 하여 찾아 온 것이나 기대가 너무 큰 것일까.
쿠처의 영광을 누리던 구자국은(龜玆國)은 한때 서역에서 가장 큰 나라로 번성하기도 하였고 한나라 때는 성 안의 집이 6970호에 인구가 8만1300명이 되었다 한다. 후한의 장군 반초가 이곳을 점령한 후로 점차 쇠퇴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옛사람들이 쿠처를 보고나서 "왕궁의 장엄함은 신의 거처와 같고 장안성과 흡사하며 집들은 장려하다 " 라고 말한 그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어찌 되었든 당나라의 안서도호부 3만의 군사가 주둔한 고성의 장대 위에서 군사들을 조련하며 지휘를 하고 있었던 고선지장군의 모습을 떠올리며 희열을 느끼는 것은 한 핏줄이라는 이유일 것이다.
해거름에 찾아온 쿠차 대사원의 모습은 쿠처 시내에서 가깝지만 시골마을 한가운데 있는 평화롭고 조용한 곳이다. 이곳에 오기 전 실크로드를 잘 알고 있는 산 후배에게 쿠처에 대하여 문의를 하니 쿠처대사원에서 말만 잘하면 사원을 관리하고 있는 수염이 멋진 노인의 안내와 설명도 들을 수 있고, 실내도 보여주며 사진촬영도 할 수 있다는 말을 전한다. 한국의 대장금 같은 드라마나 한류 열풍이 이곳에도 실려와 한국인들에 대한 좋은 인상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우리 가이드들에게는 마을사람들과 한자리 하여보는 그런 융통성은 없어 보이니 어찌 할까.
쿠처의 청진사는 신강지역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사원이라는데 생각보다 작고 아담하여 친근감이 드는 사원이다. 1500년대에 지어진 건축물은 화재로 불타버렸고 지금의 건물은 최근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
실크로드의 여러 도시에 이슬람사원이 많이 있고 사원을 총칭하여 청진사라고 부르고 있다.
사원 앞에는 마을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저녁 한나절의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은 사진기를 보려고 따라오며 사진 찍는 것을 도와주기라도 하려는 듯 웃어준다. 어느 곳이나 같은 것은 아니지만 사진을 찍기 전 사진기를 내 보이며 인사를 하자 웃는 표정을 보이며 사진을 찍어도 좋다고 한다. 이곳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 이들의 풍습을 존중하여주고 친근감을 보이면 거부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우리들이 관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실크로드 천산남로의 중심지 쿠처의 모습이 이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원과 마을사람들의 모습이 평화로운 모습으로만 보이고 과격하다는 이슬람의 분위기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쿠처의 모습에 한때는 불교가 번성하여 부처를 모신 석굴과 사원이 많았지만 이슬람세력이 들어오며 불교사원 대신 이슬람 사원인 청진사가 자리를 차지하였고, 이슬람 사람들이 활동하던 지역에 한족들이 몰려 들어오며 민족 간에 불화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다.
쿠처의 주요 실크로드지역을 살펴보고 하룻밤을 더 이곳에서 보내고 있는데 방을 함께 쓰고 있는 짝꿍이 산책을 하며 거리풍경을 돌아보고 오자며 함께 나갈 것을 청하여 일정정리나 하겠다고 하자 혼자 호텔방을 나서더니 한참 후 씩씩 거리며 들어온다. 거리의 허름한 술집에 들려 술을 한잔하고 싶었는데 술값이 비싸고 화대가 어쩠다는 둥 불만스런 얼굴이다. 그 옛날 실크로드를 오고가던 나그네들은 어떠하였을까. 거친 산길을 걸어서 황량한 사막을 지나다 만나는 반가운 오아시스 마을에서 오랜만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려고 선술집을 찾았는데 이방인이라며 술값을 비싸게 받으며 썰렁한 분위기로 대한다면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옛일은 그렇다 하더라도 최근 중국의 밤거리를 혼자 다닌다는 것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서야 위험을 자초할 것은 없는 것 같다.
짧은 시간 많은 것들을 찾아보는 가운데 실크로드의 하루는 이렇게 지나가고 내일은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실크로드의 남쪽길 서역남로를 따라간다.
실크로드가, 또 사막의 모습이 궁금한지 타국의 하룻밤이 길게만 느껴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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