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1장 한 밤의 밀회

▲ <삽화=류상영>

최서기는 망설이지도 않았다. 대봉투에서 연체자 명단을 꺼내서 합죽합죽 웃으며 황인술에게 건네주었다.

"자, 그람 정성껏 준비를 해 준 아줌마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슬슬 뜯어 볼까유?"

강서기가 입맛을 다시며 손바닥을 쓱쓱 비볐다.

"우신 소주부터 한잔 씩 하고 시작하지."

황인술은 닭다리 한 개씩을 쭉쭉 찢어서 강서기와 최서기 접시에 놓아주었다. 소주를 넘치도록 따라준 다음에 호기스럽게 말했다.

"좋쥬."

최서기는 술잔을 들어서 건배를 하고 단숨에 마셔 버렸다.

문밖에서 기침 소리와 함께 박태수와 윤길동의 인기척이 났다. 황인술은 들고 있던 술 잔을 얼른 비워버리고 방문을 활짝 열며 그들을 반겼다.

"어이구, 우리가 낄 자리가 될련지 모르겄구먼."

"강서기님은 이런데서만 얼굴을 보느만유. 최서기님도 가내 두루 편안하시쥬?"

윤길동의 말에 이어서 박태수도 넉살 좋게 말하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하하! 이런데서 보는 거시 더 실속 있는 거 아뉴?"

최서기는 박태수와 윤길동이 들어오든 말든 들고 있는 닭다리를 놓지 않았다. 소금을 듬뿍 묻혀서 게걸스럽게 먹으며 말을 하느라 입에서 살점 몇 점이 튀어 나왔다.

"자, 어여 한잔씩 들 햐."

박태수와 윤길동이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황인술이 술 주전자를 들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야 나중에 닭 값이며 술값을 동네사람들한테 분배를 시킬 때 잡음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마당에 어둠이 내려앉으면서 는개가 내리기 시작했다.

들례는 대청마루에서 무릎을 세우고 잔뜩 웅크린 자세로 마당을 응시하고 있다. 화단에 있는 꽃이며 잡초들은 서리를 맞아서 누렇게 주저앉아 있다. 오늘도 이동하는 오지 않을 모양이라고 생각하니 누렇게 뜬 접시꽃 줄기가 자신의 신세처럼 처량하게 보인다.

이동하는 요즘 들어서 일주일에 두세 번씩은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고 모산으로 간다. 일주일에 절반은 모산에 가는 셈이다. 이동하가 모산에 간다고 보고를 하고 가라는 법은 없다. 아니 일주일 내 모산으로 퇴근을 한다고 해도 입도 뻥긋 못할 처지다. 그래도 한 이불 속에서 살을 섞은 지 십 년이 다 되어간다. 아무리 비천한 신세라고 하지만 넌지시 말 한마디 정도는 해 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다 못해 열불이 나는 것 같았다.

어느 때는 화를 참다못해 멍석말이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냅다 모산으로 달려가서 면장댁 마당에서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이동하를 제 손으로 내쫓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입술을 깨물며 참았다. 그럴 때는 가슴이 터져 나가 버릴 것 같았다.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방안을 맴돌며 학! 학! 거리며 가슴 속에서 타고 있는 열기를 뿜어내야 간신히 진정이 된다.

그 년이 그 지랄로 날 우려먹을 줄 누가 알았겠어……생간을 끄내서 자근자근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년.

미친년처럼 날뛰고 싶은 심정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면 꼬막네의 해해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그 동안 꼬막네에게 갔다 바친 돈만 해도 쌀로 치면 스무 가마니가 넘는다. 작년 11월에는 둥구나무에 은젓가락 한 쌍을 모르게 박아 놓으면 승우가 두 다리를 못 쓰거나 벙어리가 된다고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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