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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문화의 한류를 위해선조의 땀과 정신
황재훈  |  news@ccdail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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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10.15  20:4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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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세계인들에게 널리 인정받는 한국적 멋스러움은 한글을 비롯한 음식, 춤, 의상 등이 있고 점차 종류가 다양하게 늘어가고 있다. 이는 그동안 서양중심의 가치관과 외부지향적 가치에서 벗어나 점차 우리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회복과 함께 드디어 세계의 중심과 문화리더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능력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세계 여러곳에서 한류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한 이유와 특징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해석되고 있지만 그중 가장 근본적인 공통점은 전통으로 이는 "우리만의 것"으로 축약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 전통적 의식주에서 '의'와 '식'은 이미 세계적 관심대상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유독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 그리고 시설인 '주'(건축문화)에 대해선 참의로 많은 과학적 장점과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소개와 평가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고 있어 아쉬움과 앞으로 이에 대한 노력과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가 한동안 접해왔던 生活容器 건축물은 선조의 땀과 정신을 담은 삶의 터전 이였다.

그런 환경 속에서 세계적으로도 드문 전이적 공간과 자연적 형태의 창조가 가능하였다. 이는 프랑스의 장식적 건축술, 독일의 생태적 환경, 미국의 상업적 건축물, 그리고 영국의 풍경적 정주공간과 다른 분명 우리들만의 것 이였다. 실내와 외부의 완충적 역할을 하던 처마와 대청마루는 우리의 가족문화를 대변해주는 특징적 공간 이였고, 문과 창문의 재료로 사용되었던 창호지는 실내에서도 자연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 줌은 물론 외형상의 독특한 미를 표현하면서 우리들의 땅에서만 존재하는 지역건축 이였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독창적 건축문화는 도시환경 속에서 더 이상 일상적인 아닌 드문 공간이 되어버렸다. 이것을 전쟁의 폐허, 급속한 경제발전, 빈번한 국제교류 등으로 스스로 합리화시키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긍심 부족에 그 원인이 있다. 그 결과로 우리의 것을 너무 쉽게 버리고 외국의 건축문화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드리고 말았다. 정적이고 수평적인 정원의 멋스러움보다는 동적이고 수직적인 고층의 기능성을 선호하고, 인간과 자연이 어울리는 그런 편안함보다는 인간과 인간이 부딪히고 건물과 건물이 숨가쁘게 마주보는 편리함을 쫓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의 도시정주환경은 남에게로부터 빌려온 건축물과 공간으로 온통 뒤덮이게 되었고 이것이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건축문화이고 지역성이 결여된 삶의 공간으로 되어버렸다. 과거의 합리적이고 단아함을 애써 외면한 오늘날의 우리 건축문화에 대한 외국인의 시선은 상당히 냉소적이고 비판적이다. 우리의 전통을 중국이나 일본의 아류로 착각하고 심지어 어떤 건축가는 한국의 건축은 '서양의 모조품으로 들어찬 혼이 없는 기능적 시설물'이라고 혹평을 서슴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건축가가 사용한 단어이다. 이런 비평적 관점의 가장 근저에 깔려있는 본질은 동양의 느낌, 한국의 얼, 그리고 지역적 정서가 빠져 있다는 말이고, 이를 우리는 주시할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가 사는 환경을 외국인의 관점대로 살아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한동안 우리 곁을 떠났던 정든 모습의 공간과 때묻은 재료가 다시 우리 곁에 찾아오는 것은 비단 다른 시선을 위해서는 결코 아니며, 새롭게 각색된 우리의 환경이 정신 깊숙이 내재된 한얼(한국민의 얼)과 결코 대체될 수 없다는 때늦은 인식에서 오는 결과이다.

다행히 일부 도시와 지역을 중심으로 국지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어 우리 정신적 자긍심은 물론 지역건축을 향한 작은 발걸음이 되고 있다.

예로부터 분명 독창적 건축문화를 가져온 우리들에게 지금의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파괴된 건축문화나 도시 조직의 회복은 너무나 오랜 시간과 노력, 그리고 경제적 대가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최근에 와서 일기 시작한 뿌리건축문화는 몇 사람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닌 그 시대 구성원의 공통적인 과제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가장 세계적인 것은 가장 우리만의 것일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되새기며 새로운 우리 정주환경을 위해 모든 지혜가 모아지길 바란다.

▲ 황재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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