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1장 한 밤의 밀회

▲ <삽화=류상영>

근무시간 중에 춘임이를 데리고 들어 온 이동하는 방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대청마루에 걸터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턱으로 들례를 가리켰다.

여자?

들례는 유부남과 바람을 피우다 들킨 여자처럼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옥천댁처럼 주인마님이라는 말은 사치스럽다. 면사무소 소사 박생수처럼 사모님이라고 부르라고 해도 들을 사람이 없으니까 손가락질 할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한낱 거리의 여자를 부르듯 그냥 여자라고 소개를 하니까 마치 자신도 춘임이와 동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암 말이 읎어?"

이동하가 담뱃재를 털며 들례를 추궁하듯 바라본다.

"너 이름이 뭐여?"

들례는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을 때처럼 찡그린 얼굴로 물었다.

"춘임이유. 박춘임."

"춘임이구먼. 잘 왔다."

들례는 생각 같아서는 나이가 및 살이냐? 고향은 어디냐? 부모는 살아 있느냐? 그 동안 뭘 하고 살았느냐? 어떡하다 여기까지 흘러 왔느냐? 등 미주알고주알 묻고 싶었다. 그러나 이동하가 곁에 있어서 묻고 싶은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마치 이동하에게 반항이라도 하듯 짤막하게 말하고 먼 하늘을 바라봤다.

"나 오늘 즈녁 먹고 들어 올팅게 그리 알어."

"알았슈. 그람 잘 댕겨 오셔유."

이동하가 담배를 입에 물고 일어서며 말했다. 들례는 이동하를 따라 일어서며 춘임에게 너도 배웅을 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러나 춘임은 들례를 개 달쳐다보듯 멀뚱멀뚱 쳐다만 볼 뿐 이동하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들례는 춘임에게 인사하는 법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동하가 미워서 혼자 배웅을 했다.

"내가 누군지 알겄지?"

이동하가 양철대문을 나간 후였다. 춘임은 그때까지 대청마루 앞에 서 있는 것도 아니다. 대청마루에 척 걸터앉아서 팔려온 강아지마냥 마당이며 집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들례가 춘임이 옆에 앉으며 차갑게 물었다.

"사모님아니셔유?"

"그래, 시방부터 니 사모님이여. 그릏게 알고 우신 걸레 빨아 와서 마루부텀 딲아라."

"마당부텀 쓸어야 겠네유. 마루부텀 딲으믄 난중에 먼지가 앉잖아유."

들례를 따라 시선을 옮기고 있던 춘임은 금방 히히 웃는 얼굴로 마당으로 내려섰다.

"그년, 뚝배기보담 장맛이라드니 생긴 거 하고 틀리구먼."

들례는 춘임이 생긴 외모에 걸맞지 않게 제법 눈치가 빠르다는 생각 피식 웃었었다.

"지는 막걸리는 암만 마셔도 취한 적이 읎슈. 이걸 마시고 술주정을 하는 남자들을 보믄 저 사람이 참말인가, 공갈로 저르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니께유."

춘임은 들례가 따라 준 술을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웠다.

"안직은 니가 세상을 들 살았다는 증거여."

"그기 뭔 말 이대유?"

"그걸 내가 워티게 아냐? 너도 모르는데……"

들례는 쓸쓸히 웃으며 머리카락을 이마 위로 끌어 올렸다. 갑자기 춘임이 부러웠다. 춘임의 나이에 다나까를 만났다. 만약 그때 다나까를 따라서 일본으로 갔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마음이 편했을 것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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