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장 한 밤의 밀회
| ▲ <삽화=류상영> |
들례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춘임을 바라보며 반문했다.
"글씨유."
들례와 다르게 버릇없는 승철을 속으로 욕하고 있던 춘임이 토란껍질을 까면서 입술을 삐죽거렸다.
"씨……내가 하는 말 다 들어놓고도 안 들은 척 하고 있구먼. 내가 감자 쪄 달라고 했잖여!"
승철은 들례와 춘임을 번갈아 노려보고 나서 횅하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는 가 했더니 이내 밖으로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분해서 참을 수 없다는 얼굴로 들례를 노려보았다.
"왜……왜 그라능겨?"
들례는 승철의 얼굴에서 이동하의 얼굴이 겹쳐지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화가 나서 노려보는 얼굴이 아니다. 돈밖에 모르는 수전노가 길거리에서 누더기를 걸치고 앉아 있는 거지를 바라보는 격멸의 눈빛이다. 갑자기 목이 바짝 말라 버렸다. 목소리가 쉰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아서 더듬거리며 승철을 바라보았다.
"하여튼 무식한 것들 한티는 똑 같은 말을 및 번씩이나 해야 한당께."
"머……머라고?"
승철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분명 아이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승철의 표정하며 목소리의 톤은 큰 딸인 애자와 비슷했고 이동하와 흡사했다. 마치 이동하가 술에 취해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멸시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근본이 없는 것들은 다 똑같당께. 라고 중얼거리는 목소리와 너무 흡사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또, 한븐만 내 말 못 들었다고 해 봐라. 그 때는 내가 가만있나 봐라. 아부지한테 야기해서 다 쫓아내버리고 말팅께……"
승철은 새파랗게 질린 들례의 얼굴을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노려보다가 홱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갔다.
춘임은 어린 승철의 기세에 짓눌려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대청마루에 걸터앉으며 들례를 바라본다. 파랗게 질려 있는 들례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간신히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럴 수는 읎는거여! 이럴 수는 읎어!
손끝으로 툭 건들기만 해도 재로 만든 인형처럼 와르르 무너져 버릴 것 같은 들례의 얼굴에 갑자기 서서히 힘들어가기 시작했다.
으메, 저……저르다 사고 나는 거 아닝가 모르겄구먼.
들례의 눈빛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한 뼘도 안 되어 보일 정도로 좁고 가녀린 어께가 무색하리만큼 두 눈에서 날카롭게 빛이 났다. 마치 어두운 숲속에서 먹이를 노리는 짐승처럼 빛을 뿜어내는 눈빛으로 닫혀 있는 승철의 방문을 노려보았다.
"사……사모님!"
창호지문을 뚫어 버릴 것처럼 노려보던 들례가 벌떡 일어난 것과 춘임이 날카롭게 들례를 부른 것은 거의 순간이었다.
"아……암것도 아녀……암것도 아녀……"
들례는 춘임이 날카롭게 부르는 소리가 아니었다면 승철의 방으로 뛰어 들어가 버릴 뻔했다. 팔자 좋게 만화책을 보고 있을 승철을 일으켜 세워서, 내가 뉜지 아느냐고, 감히 니 어미한테 그럴 수가 있느냐고, 그 어린 것의 멱살을 붙잡아 흔들고 싶었다. 하지만 춘임이 부르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끼며 도로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