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묵언의 가르침
구병산에 다녀왔다. 산은 빛과 바람과 시간이 한 몸으로 익은 듯 단풍이 절정이었다. 아홉 개의 봉우리를 이룬 바위는 해마다 절경을 보아 온 듯 무덤덤하고 묵묵하게 등산객을 맞이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펼쳐진 장관을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그저 탄성만 신음처럼 흘러나왔다. 수 천 수 만년 견뎌온 인고의 결정체였다. 물론 구병산보다 아름답고 장엄한 산은 우리나라에도 수없이 많지만 자연의 장엄과 경건에 숙연해지지 않을 없었다.
가끔 만나는 자연은 묵언의 가르침을 주고 있다.
지난여름, 그러니까 팔월에 모처럼 아내와 설악동에서 하룻밤 묵었다. 이튿날 일곱 시에 속소를 출발해서 부슬비가 내리는 설악산 소공원으로 들어갔다. 비가 내리는 탓인지 한가했다. 흔들바위가 있는 곳으로 갈까, 신흥사 경내를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올까 잠깐 망설이다가 비선대로 발길을 옮겼다. 비가 부슬거리는 설악 깊은 계곡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계곡은 초록의 구슬이 담긴 유리항아리처럼 맑았다. 녹음은 마치 이마를 어루만지는 손처럼 내 안에 녹색의 물을 들였다. 비선대를 올려다보는 가슴에서 천길 폭포수를 맞는 듯한 떨림이 자지러졌다. 역시 우리나라 강토는 섬새하기도 하지만 기개 또한 대단했다.
오를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흥이랄까. 이미 지났던 길을 다시 지나면서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신비로움이 우리 자연이다. 내려가는 계단은 과거를 되돌아보게 했다. 내가 밟고 있는 계단이 현재이자 미래이며 과거인 것이다. 이 계단에서 맺은, 내게는 아름답다고 여겨진 인연이 타인에게 상처가 된 것은 아닐까. 혹여 한 걸음에 두 계단을 오르려는 욕심과 오만으로 살아 온 것은 아닐까.
내려오다 들린 신흥사 해우소의 글귀는 또 다른 가르침을 주었다.
코끼리는 코로 1톤도 넘을 물건을 들어 올리는 힘이 있다 한다. 그런데 썩은 나무 말뚝에 묶어 놓아도 그 자리에서 결코 벗어나는 일이 없단다. 슬쩍 잡아당기기만 하여도 그 자리에서 이탈할 수도 있는데 썩은 말뚝에 묶여 있으면서도 잡아당길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다, 코끼리는 어려서부터 쇠말뚝에 묶여 키워진다 한다. 그래서 코끼리는 묶이면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학습하게 되었고, 썩은 나무 말뚝에 묶어 놓아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나는 어떤 말뚝에 묶여 있단 말인가? 무엇이 나를 묶고 있단 말인가? 이러한 의문은, 나를 묶어 놓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일깨웠다.
교사인 나는 혹여 어린 학생들을 쇠말뚝에 묶어 놓으려 의도한 적은 없는가. 장차 어른이 돼서도 내가 묶어 놓은 쇠말뚝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길들이려 한 적은 없는가. 내가 경험했던 것을 그대로 들려주어 학생이 나름대로 판단하고 깨우치도록 배려하지 않고, 너희들은 내 경험을 답습하며 살아야 한다고 강요한 것은 아닌가. 그리고 지나치게 치우친 색깔론을 함부로 말하고 다닌 적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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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식 청주 충북대 사대부중 교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