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돌·철기시대 이후 철로 만듦

땅을 파고 일구는 연장은 돌괭이·돌보습·돌삽 등으로 분류되고 있는데 이러한 농기구를 통칭하여 굴지구(堀地具)라고 한다.

보습은 쟁기나 극쟁이에서 땅을 파서 일구는 기능을 가진 날을 말하는데,이러한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돌보습은 신바닥이나 버들잎 모양의 것이 많다. 작은 것은 길이가 15∼20㎝ 정도에서 큰 것은 50∼65㎝에 이르기도 한다. 20㎝ 미만의 소형은 보습보다는 돌삽이나 돌가래로 구분되기도 한다.

재질은 선사시대에는 돌을 사용하였으나 철기시대 이후로는 철제 보습을 썼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보습으로는 신석기시대 유적인 봉산 지탑리, 선봉 서포항,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것을 들 수 있는데, 봉산 지탑리에서 돌로 만든 보습이 57개나 출토되었다. 이러한 돌보습은 땅을 갈고 일굴 때 쓰는 갈이농사를 할 수 있는 중요한 농기구로, 그 생김새를 보면 허리가 잘록한 표주박형과 버들잎 모양이 많고 작은 것은 30∼40㎝, 큰 것은 50∼60㎝에 이른다. 이러한 돌보습은 오늘날 쟁기에 다는 보습과 같은 역할을 가진 것이지만 쟁기와 같은 형태는 없으며 짐승의 힘을 이용하지 않고 사람이 손으로 쓰는 보습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청동기시대 보습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철기시대 이후에 나타나는 쇠로 만든 보습은 따비, 극쟁이, 쟁기 등에 보이고 있다.

따비의 긴 막대 앞부분에 끼운 보습은 대개 말굽쇠, 주걱, 송곳 모양을 하고 있는데, 특히 말굽쇠모양은 우리나라에서만 보이고 중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극쟁이와 쟁기의 보습은 삼국시대 초기부터 쓰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데, 극쟁이 보습은 볏이 없고 술이 곧게 내려가며, 끝이 무딘 대신에 쟁기 보습은 볏이 달려있고 술바닥 부위가 평평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러한 보습은 밭을 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농기구로 선사시대에는 자체로만, 철기시대 이후에는 따비, 쟁기, 극쟁이 등에 끼워 사용하였다. 이 보습은 작업의 효율성은 물론 따비, 쟁기, 극쟁이 등의 본체 보호를 위한 장치이기도 하여 보습이 닳거나 부러지면 다른 보습으로 바꾸어 끼울 수 있는 한층 발달된 과학슬기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 윤용현 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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