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핑크스 수수께끼 진정한 답

신화는 허구의 이야기로 겉으로 보기에는 황당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때로는 그 속에서 우리의 숨겨진 진실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고대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신화에서도 그렇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리라는 신탁 때문에 테베의 왕궁에서 버림받았다가 우연히 이웃 왕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오이디푸스는 청년이 되었을 때 같은 신탁을 다시 듣고 키워준 부모를 해를 끼칠 것이 두려워 왕궁을 떠난다. 하지만 그는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마차에 타고 있던 친아버지 라이오스왕을 살해하고 테베 국민들을 괴롭히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왕좌를 차지해 왕비인 친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하게 된다. 절묘한 우연이고, 숙명론적인 파국이다.

그런데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 신화에 비친 우리자신의 내면을 보게 된다. 그가 친아버지를 살해하게 되는 것은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친 마차에 길을 양보하지 않다가 마부가 자기 말을 해친 것에 분노하여 마차에 탄 사람들을 모조리 살해하였기 때문이다. 자기를 무시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격정을 다스리지 못해 저지른 우발적인 살인은 우리가 받는 숱한 외부의 자극과 모욕들을 참지 못해 터뜨리는 격정과 분노의 부정적인 반응의 극화된 이미지인 것이다.

그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의 답을 맞혀 테베를 차지하고 왕비인 친어머니를 아내로 맞이하는 데에는 무지와 오만이 숨겨져 있다. 유명한 스핑크스의 질문은 '아침에는 네 발로, 낮에는 두 발로, 그리고 저녁에는 세 발로 걸어 다니는 동물'이 무엇이지를 묻는 것이었다. 오이디푸스는 '인간'이라 답하는 순간, 자기가 정말 그 답을 '안다고' 생각했다. 아기 때는 네발로 기어 다니고, 청년이 되어서는 두발로 서서다니다가 나이가 들면 지팡이에 의지하여 세발로 다니기 때문이다. 과연 스핑크스가 요구한 것이 단순히 난센스 퀴즈 답 같은 '인간'이라는 단어였을까? 오이디푸스는 인간의 신체의 변화는 알았지만 질문이 은유적으로 빗대어 깊이 성찰하게 하고자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은 없었으며, '인간'이라는 단어는 맞혔만 '인간'을 알지는 못했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철저히 누군가의 손길에 의존해야 하는 나약한 존재였던 인간이 성장하면서 나약하고 전적으로 의존적이던 자신의 과거를 잊어버리고 스스로의 힘을 절대 신뢰하며 굳건하게 스스로를 지탱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의지할 것과 도움이 필요한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다시 자각하며 겸손해지고 성숙해지는 인간에 대한 이해야말로 스핑크스가 요구한 답이었을지 모른다. 인간의 운명을 성찰하기를 바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 빈껍데기 답을 제시하며 의기양양했던 오이디푸스는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생각한 무지와 교만의 과오를 범했고 그 결과 '인간'을 진정 이해한 자에게 주어지는 나라의 주인의 자리와 왕비를 덥석 잡은 것이다. 모든 진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신이 안다고 생각한 것이 아는 것이 아니었으며, 눈을 뜨고 보면서도 자신을 보지 못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교만을 겸손히 뉘우치며 스스로 눈을 멀게 했을 때 비로소 무지를 벗고 볼 수 있었다. 오이디푸스가 분노와 무지, 교만으로 짓는 과오들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니, 오이디푸스 신화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허망한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진정어린 목소리로 나에게 들려주는 먼 인류의 지혜로운 조언처럼 느껴진다.

스핑크스도 자신의 답이 공개된 지 수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애타게 해답을 찾는 자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인간,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평생 풀어가야 할 수수께끼니까.


▲ 황혜영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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