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내지 못한 이야기

하늘을 올려보면 어머니를 느낀다 바람이라고 생긴 건 모두 허허롭게 지나며 길을 만들고 있다. 당신이 누우신 산에까지 물무늬의 떨림같은 빈 그림자가 밀려온다. 나이만 들었지 젖내음으로 군살을 박고 아들 이름 위에 꼭 어머니를 쓴다. 생전, 부지깽이가 다 타도록 뻐꿈 담배 연기 만들며 고해하던 일도 어머니의 기인 겨울 준비란 걸 눈치못챈 바보. 서둘지 않는 걸음으로낮은 해 어루만지며 홀로 깊어진 시간의 계단에 서서 계절 하나를 놓는다. 필자의 시 '바람 이야기' 전문이다.

지난 달 본란을 통해'효도방정식'이란 제하로 내 글이 올려진 날,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보낸 메일 한통에 묶여 또 한번 해법의 긴 늪을 허우적거려야만 했다.
내용인즉, 마음이 묻어나는 팔남매의 어머니를 생각하고 쓰신 글을 읽으며 가슴으로 짜낸 눈물이 나오려합니다. 저에게도 차마 꺼내지 못할 어머니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디가서 꺼이꺼이 목놓아 울고 싶은 어머니얘기입니다. 제 지갑엔 아직도 차마 버리지 못하는 온라인 번호가 있습니다. 희미해진 온라인 번호.어머니께 그리도 못난 딸이 용돈 조금 부치고 돌아와서 효를 조금은 했노라고 혼자 위로받던 번호입니다. 언젠가는 꼭 후회할 줄 알면서도 왜 그리도 잘못을 한 건지. 2002년. 칼바람 속에 어머니의 행여가 떠나가던 날. 목 놓아울고 울었습니다. 어머님께 무스탕 한 벌 못 사드린 저는, 그 날 따뜻한 무스탕을 입고 있었으니'어머니 죄송합니다' 그 후, 어머님 한 번,꿈속에서 뵈었을 때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고 빌었으나우리 어머니는 끝내 아무 말씀을 아니 하셨습니다. 잘못이 너무 커서 용서를 해 줄 수 없나 봅니다. 저는 어머니를 잊으려 무진 애를 썼습니다. 아버진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없이 5남매 주렁주렁 매달고 사신 어머니. 억지로 잊고 산 저에게 국장님의 글이 가슴을 적십니다. 오늘은 황금 들판이 황량해 보입니다. 지금부터 또 잊겠습니다. 잊어버리겠습니다.(후략) 동양의 고전 중 베스트셀러는 단연 논어이다.

첫 구절에서 군자는 평생 배우는 일을 강조하고 있다. 효에 대한 재무장이야말로 갈바람으로 씻어낸 참된 자기모습 아닐까? 터득하는 체험 부모님이 합장하고 계신 산소를 오르는 상봉산 초입엔 꽤나 덩치 큰 밤나무 세 그루가 수호신처럼 서 있다.묘지가 처음 조성될 무렵은 회초리 정도의 묘목에 불과했을 텐데,40여년 지난 세월이니 야트막한 하늘까지 막는다. 이번 한가위 성묘길은 형제에 조카들까지 수북하게 쏟아진 알밤을 주머니 마다 채우며 조상이 주신 선물로 흐뭇해 했다. 촘촘하게 가시를 꽂아 여름내 새끼를 길러 품더니 차례로 몸을 열어 세상에 내놓는 밤송이 일생 쯤 잡히는 걸 보니 때늦은 철이 드는건지 모를 일이다. 가장 민감한 변화를색깔로 단장하는 자연은 네계절의 굴레가 일정하지만, 사람이 이룬 사회에선사람으로서 기본이 우선과제다.

늦가을 바지랑대 끝 고추잠자리가 쉼터의 보상이라도 하려는듯 주위를 지키는 단풍나무까지 똑같은 색깔로 빚은 경관을 바라보니 나눔의 실천에 뿌듯함까지 차오른다.사람은 누구나 고유의 향기를 갖고 또 그리워하기도 한다. 호박 묘 몇개를 묻어놓고 잎이 뭉그러지도록넝쿨 사이로 핀 꽃을 지켜가며 즐거워하던 것도 어렷을 적 그 꽃속에서 혀끝을 감치던 꿀 맛 때문이었다.요즘 아이들 커가는 걸 보면 장면 장면마다 감탄으로 출렁인다.다변화하고 있는 사회에의 발빠른 적응인지 몰라도아이들에게선 아이냄새를 맡았으면 좋으련만 가끔은 어른냄새가 진동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도무지 아쉬울 거라곤 눈꼽만큼도 없게끔받침해온 자녀들 앞에서 이다음 툭하면 입버릇처럼 나올세상 부모의 공통어가 선명하게 들어온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 데" 너무 뻔하다. 가끔은 자갈길을 맨발로 걸어봐야 신발의 고마움을 알고, 모자람을 터득해야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안다.

올가을 들어 토요 학습일엔 체험을 위해 부모와 함께 시골을 찾는 어린이가 부쩍 늘었다. "엄마는 바닥이 차가운 할아버지 방을 닦으며 울으셨고, 아빠는햇볕에 말린 벼를 자루에 담다가 쓰러져 이내 허리를 못 펴시는 할머니를 부축하며 눈물을 보이셨다.농촌은 빈터도 넓고 공기도 좋은 곳인데, 빨리 아파트로 모셔야겠다는 엄마 아빠 말씀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부모의 눈물을 직접 경험한 아이에겐 분명 효행의 싹이 자란다. 어린 마음이지만 가족이란 뿌리에 대한 뭔가를 가슴 한켠에 키워가며 일상을다질 것 아닌가?사람에겐 사람 냄새가 살아야 따스한 체온도 나눠지리라.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의 냄새로 말이다. "그동안 멀리서 파랑새를 찾으려 했지만 사실은 언제나 우리집에 있었다."라는 메텔를링크어록이 크게 와 닿는다. 효와 불효의 경계야 말로 엄마 아빠가 부모님을 향한 만큼의 가감없는 재현이기 때문에.

▲ 오병익
청주교육청 학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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