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장 달 그림자

▲ <삽화=류상영>

변쌍출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막걸리 잔을 들었다. 황인술이 변쌍출의 말을 끊으며 걱정을 하는 척 했다.

"진규는 올게 오 학년 올라 강께 큰 돈 들어 갈 거는 없슈. 하지만 명년 팔월에 어머 환갑잔치를 해 드려야 할라믄 돼지 한 마리는 못 잡아도 쌀 두 가마니는 쉽게 나갈 거고. 한 푼이라도 빛을 들 질라믄 당장 명절 끝부터 나무하러 가야 해유. 소라는 거시 등치 크다고 해서 한 백 년 사는 동물도 아니잖유. 얼릉 송아지라도 나믄 심 좀 피겄는데 워티게 생겨 처먹은 소가 시 번이나 접을 부쳤는데, 접 부치는 값만 까먹고 송아지는 소식이 읎응께 사람 미치고 팔짝 뛰겄슈."

"우리 향숙이도 삼 월이믄 중학교 이 학년 올라가. 수업료가 삼 개월에 팔천 원 돈이여. 그걸로 끝나는기 아니고 지자바라 그른지 가정실습비니 머니 해서 돈 들어가는기 엄청나. 어림잡아도 삼 개월에 쌀 한가마니 갖고 부족할 거 가텨. 태수도 아들을 중핵교 갈치느라 보통 고생이 아닐껴. 하지만 워칙햐. 두 해 착실히 갚았응께 후년에도 콩팥에 쥐나도록 일해서 돈을 갚는 수 벢에……"

윤길동이 주전자를 흔들어 막걸리를 따르면서 박태수를 이해 한다는 얼굴로 말했다.

"태수 혼자만 일 하는 것도 아니잖여. 식구도 보통은 넘잖여. 평래 형님도 아직 팔팔 하싱께 정월 대보름 때까지는 놀아도 돈 갚는데는 지장 읎을껴."

"강아지도 바쁜 농사철에도 저수지에서 낚시만 하고 있는 기팔이 형님은 섣달에 들어 온 머슴 주인 여핀네 속곳 걱정하는 야기 일절로 끝내고 슬슬 시작을 해 보쥬.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까닭은 모두들 알고 계시쥬?"

황인술이 앉은 자리에서 한 뼘 정도 앞으로 내다 앉으며 좌중의 분위기를 집중 시켰다.

"둥구나무 앞에서 고사 지낼 문제로 상의하러 온기 아닝가?"

"작년에는 태수가 제관을 했든가? 머여 주전자가 왜 이리 개벼워 술이 떨어 졌구먼."

모산은 옛날부터 정월 대보름 전에 둥구나무에 고사를 지냈다. 고사를 주제하는 제관은 항상 그믐날 선출하는 것이 관례였다. 순배영감의 말에 이어서 변쌍출이 주전자를 들어 보였다.

"거기, 뉘여. 금순이구먼. 금순아 여기 술 떨어졌다. 어여 오니라. 어 춥다! 냘은 굉장하겄는데."

방문 앞에 앉아 있던 김춘섭이 방문을 열었다. 헛간에 달아 놓은 남포등과 부엌이며 뒷간과 방에 불이 켜져 있어서 마당이 환하다. 새해를 맞는 시간에 들어올지도 모르는 잡귀를 막기 위해서 켜 놓은 것이다. 여기저기서 비치는 불빛이 내려앉고 있는 마당은 차가운 가죽처럼 얼어붙어 있다. 정지에서는 아직도 세찬을 만들고 있는지 찬바람을 타고 오는 냄새가 고소하다. 때 마침 정지에서 나오는 금순이를 향해 빈 주전자를 흔들어 보였다.

"알았슈."

"어따, 금순이도 후년에는 시집가야 겄구먼. 냘이면 금순이기 및 살이여?"

장기팔이 방문 앞에 서 있는 금순이를 바라보다 황인술에게 물었다.

"오늘 밤이 지나믄 열여덟 살이잖여. 옛날이라믄 몰라도 요새는 스무 살이 넘어서 시집을 보내는 추세라도 시집보내기는 이르잖여. 설 쉬고 며칠 쉬었다가 서울로 보내기로 했구먼. 광일이가 일하는 전당포 사장 집에서 식모를 구한다고 해서 거길 보내기로 했구먼. 금순이 동생 광성이는 대전 즈 외삼춘 양복점에서 양복기술을 배우고 있고."

"구장네 자식은 죄다 기술자로 나설 셈이구먼. 그려, 생각 잘했어. 농사 백날 져 봐야 따신 밥 한 그릇 맘 놓고 못 먹어. 그라고 전당포라믄 그 머여, 금반지나 양복 같은 거를 맥기믄 돈을 빌려 주는 데를 말하는 거 아녀?"

"허! 형님은 나도 모르는 걸 워티게 그리 잘 안대유?"

순배영감의 말에 변쌍출이 혀를 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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