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부, 실크로드 서역남도의 조용한 도시 민풍

▲ 사진 1 이른 아침 민풍거리의 모습 2 마오쩌둥과 위구르족과의 만남 3 시장을 알리는 입구 4 시골마을에서 온 아주머니들은 아직 보따리를 펼치지 않고 있다. 5 할머니와 손자들 6 과일판매점 메론이 먹음직스럽다 7 마약퇴치 운동을 하고 있는 공안들 8 위구르족 두 노인 9 실크로드 서역남로를 따라 하얀설산 곤륜산맥을 따라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민풍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고 있다. 민풍시를 들어서니 넓은 초원에 전원적인 모습에 조용한 시골마을이라는 기분 좋은 대면이다. 처음 받는 인상이 깨끗해 보이고 잘 정돈된 도시라는 느낌이 든다. 도시계획으로 넓은 도로가 시원스럽고 높고 큰 건물들은 없으나 깨끗해 보이는 상가와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다만 호텔은 아담하게 생겼는데 민풍(民豊·민펑)현에서 운영하는 관계로 개인 호텔에 비해 관리부실이 너무 심하다. 사막을 건너며 끈적거리는 모래와 먼지를 뒤집어 쓴 땀을 씻으려 하나 물이 안 나온다. 한참을 기다려 샤워기의 물은 나오는데 이번에는 화장실 변기의 물이 나오지 않으니 원, 샤워기물로 변기의 물질을 내려 보내려 하지만 효과도 없고 집 떠나고 나면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 제일이라고 하는데 잘 싸는 것이 문제가 되니 걱정이다. 어쩔 수 없이 1층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오르내리는 불편함을 참아야 한다. 더구나 한방을 같이 쓰고 있는 짝꿍 형이 본인 표현대로 쿠처에서 광란의 밤을 보냈는지 사막을 건너오며 "몸이 안 좋다, 안 좋아"하더니 급기야 몸살로 알아 누워 버린다. 말도 못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본인의 나이가 오십대 중반이라는 것을 잊고 무리를 한 것 같다. 나그네의 설움을 누가 알겠는가마는 동료가 됐으니 도와야지, 저녁시장이 파한 바자르(시장)구경을 하고나선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해 보지만 잠 못 이루는 실크로드의 밤이 되고 말았다.
이튿날, 이른 아침 오지 않는 잠을 털어내고 사진기를 들고 새벽의 민풍거리로 나선다. 운이 있으면 일출사진도 한 장 찍어보고 싶고 민풍의 아침표정을 보고 싶어서다. 아직 어둠이 덜 밀려나 어슴푸레한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들만 이따금 보이고 마오쩌둥의 치적을 알리는 탑만 기다리고 있다.
작은 도시라 길을 따라 가니 바로 백양나무로 조성된 시골모습이 나오고 혼자라는 생각에 더 멀리 가지 못하고 돌아서서 오는데 저 앞으로 이십 여명이 길을 막고 있다. 조용한 산길에서 짐승보다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렵다고 하던데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며 가까이 가니 새벽사원으로 가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동네 어른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꼭 주먹패들이 서있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가볍게 인사를 하니 웬 사람인가 하는 표정으로 반갑게 받아준다.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다. 호텔방으로 돌아와 짝꿍에게 몸 상태가 어떠냐고 물어보니 많이 좋아졌다고 해 다행스럽다.
실크로드 서역남로의 중간도시 민풍의 옛 이름은 니야(尼雅)이며 쿤룬산맥(崑崙山脈 곤륜산맥)에서 발원해 타클라마칸사막으로 숨어버리는 니야 강변에 있는 전형적인 오아시스 도시로 타림분지 남쪽 기슭을 따라 카스갈을 지나 카자흐스탄으로 이어지는 동서교통로 즉 실크로드의 서역남도가 지나간다. 북쪽으로 120km지점에 한나라 시대에 번영했던 정절국(精絶國)의 유적으로 보이는 니야 유적이 있다고 한다.
민풍을 지나가고 있는 서역남도는 서안을 출발하여 돈황∼누란∼미란∼체르첸∼니야(민풍)∼ 호탄∼카스로 연결되고 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민풍을 나와 실크로드 서역남도를 따라 백양나무 가로수가 도로 옆으로 키재기를 하듯 높다랗게 서있는 포장된 315번 도로를 가다보면 좌측으로 하얀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곤륜산맥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도로를 따라 가며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자료에 의하면 지각운동으로 1차 파미르고원이 만들어지고, 2차 곤륜산맥, 3차 천산산맥, 4차 알타이산맥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바다가 지각운동으로 솟아올라 산줄기들이 만들어져 산과 사막에는 소금과 바다생물의 화석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민풍에서 110km를 달려오니 작은 읍 정도 크기의 우전(于田)현에 장이 서고 있다. 뒤에 앉아 빨간 모자를 쓰고 해병대 유격교관처럼 보이는 큰형(칠십대)이 사람과 당나귀 마차가 몰려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장날인가 보다며 들려가자고 한다.
"아무리 바빠도 장 구경하고 가야지 안 그래? "맞지요 맞습니다."
이른 장이라 그런지 아직 많은 좌판이 펼쳐지고 있지 않은 작은 시골장이지만 볼만하다. 우리 시골장의 모습처럼 주변 지역사람들이 몰려들고 하얀 천을 뒤집어 쓴 아주머니들이 보따리를 앞에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보따리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매우 궁금하다. 보따리를 펼쳐보라고 할 수도 없고, 당나귀 마차와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장바닥은 물건들이 펼쳐지기 시작하며 음식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크기는 괴산장날 규모이고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것 같다. 어머니 손을 꼭 잡고 구경 가던 2일과 7일에 열리던 칠성 장날은 비록 작은 시골장이였지만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의 한 페이지를 남기고 있다. 어머니 치맛자락이라도 잡고 있어야 양말이라도 한켤레 얻어 신었고, 우리네 시골 장에는 국밥에 순대도 있고 막걸리가 있는데 이곳에는 양 꼬치구이와 밀빵이 보이고 막걸리 대신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와 손자들이 아침 겸 점심인지 이름 모르는 음식을 먹으며 우리를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친구지간처럼 보이는 나이가 지긋한 두 노인은 빵과 스프를 먹으며 담소 중이다. 모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하고 사진기를 내밀자 바라보며 웃거나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들의 60년대에도 저런 모습이 있었다.
한쪽에서는 마차에 메론(하미과)을 잔뜩 실고 와서 팔고 있는데 다른 과일가게보다 사람들이 몰려 있어 특별히 맛이 있는 것인지 돌아서서는 한통 사볼걸 하며 후회를 하고, 할아버지께서 군자산 아래 산비탈 밭을 일궈 참외밭을 하며 여름장에 참외를 따다 파시던 그 시절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위구르족들이 즐겨 쓰는 모자를 쓰고 오랜만에 만나는 사돈과 집안사람들은 반가움에 부둥켜안으며 반가움을 더하고, 산 넘어 이웃동네에 사는 친구들은 악수를 하며 정을 나누고 있는데 정겨운 그 모습들을 사진에 담으려하니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는다.
시장 한편에선 약장수가 뱀이라도 파는지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어 끼어들어 보니 공안(경찰)들이 현수막 그림을 내걸고 마약퇴치 운동을 하는 중이란다. 공안 한사람이 내게 다가와 한자와 위구르어로 된 인쇄물을 몇 장 주고는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한마디로 외국인 여행자가 중국의 마약퇴치운동에 참여하는 모델이 돼 달라는 것이라 웃으며 응해 준다.
이날 저녁 호탄의 텔레비전 뉴스로 우전시장의 마약퇴치 운동이 나왔다고 한다.
어머니를 따라 나온 위구르족 어린이의 눈썹 그림이 특이하다. 호텔의 아가씨도 눈썹과 눈썹사이를 검은 선으로 연결해 그려놓고 있던데 자세히 알아보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모자를 쓴 나이가 지긋한 두 노인은 세상살이 이야기에 빠져 들고 있는 것 같다.
장이 무르익어가는 모습을 다 보지 못하고 아쉬움에 사람들을 향해 "시장구경 잘하고 갑니다 " 하며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인사를 하고 돌아서 나온다.
버스에서 가지고 온 자료를 들쳐보니 이곳 우전(于田)은 옥으로 유명한 화전(和田호탄·허텐)의 옛 땅 이름인 우전국과는 다른 곳이다.
길거리 노점의 한 가게에서 아주머니 한분이 밀빵을 한 아름 안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밀빵은 밀가루에 소금을 넣고 반죽을 해 화덕 속에 넣어 구운 빵으로 이곳 사람들에게는 주식과 같다. 약간의 짠맛에 씹을수록 구수한 맛도 난다.
백양나무 가로수가 늘어선 도로를 따라 실크로드 서역남로를 따라, 하얀 만년설을 산 능선에 이고 있는 곤륜산맥을 따라 실크로드 여행은 계속되고 있다.
오늘은 부지런히 달려 호탄에 도착하면 오후시간 호탄의 유적들을 찾아보아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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