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장 달 그림자

"아버지, 오늘 토요일이니까 아버지도 오전근무만 하시는 거죠? 우리 집에 가기 전에 점심 좀 사줘. 우리 대전에서 아침 일찍 기차타고 오느라고 점심도 못 먹었단 말야."

중학교 일 학년인 말자가 응석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야 어려운 것이 읎지. 근데 영자는 왜 안 옹겨? 올라믄 영자 학교 갔다 온 다음에 같이 내려오지 않구."

"영자는 내년에 중학교 시험 쳐야 하잖아요. 가정교사 선생님께서 공부해야 한다며 내려가지 말라고 해서 우리 둘이만 내려 왔어요. 엄마는 잘 계시죠? 할아버지하고 할머니도."

애자는 중학교 3학년이다. 말자와 두 살터울인데도 한참이나 나이 많은 여자처럼 얌전한 목소리로 안부를 물었다.

"그려, 니 엄마야 맨날 집에만 있는 사람이 별 일이 있을 턱이 있겄냐? 할아부지 할머니도 다 건강하시다. 니덜도 그 동안 잘 있었지?"

"아버지, 빨리 점심 먹으로 가자. 나 짜장면 먹고 싶단 말여."

여직원이 커피를 들고 왔다. 애자는 여직원이 건네는 커피잔을 받았다. 그러나 말자는 커피잔을 바라보지도 않고 이동하에게 보챘다.

"논산댁은 니덜 아침도 안 해주능겨?"

이동하는 집을 한 채 사서 딸들을 기숙시키고 있었다. 밥은 논산댁이라는 사십대 여자가 해 주고, 딸들 공부는 충남대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이 상주를 하면서 지도를 하고 있다. 아직 점심시간이 되려면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도 말자가 보채는 말에 이동하가 물었다.

"말자가 밥 굶는 거 보셨어요? 기차를 타고 오면서도 배고프다고 해서 찐계란하고 사이다를 사줘서 먹었어요. 점심은 조금 있다 먹어도 되니까 이따 먹기로 하고 먼저 아버지한테 드릴 말씀이 있어요. 말자야 넌 조금만 나가 있을래?

"무슨 말을 할라고 그러는데? 혹시 내 실력 떨어졌다고 고자질 하는 건 아니지?"

말자는 두 살 터울인 애자를 어려워했다. 화가 나면 과연 눈물이 날 때까지 매섭게 쏘아붙이는 성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뒤늦게 커피잔을 들어서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모르겄지만, 말자는 커피 마셔. 애자는 나한테 뭔 말을 할라고 하는지 어여 해 보고."

"말자야 아버지 말씀대로 여기서 커피를 마셔."

애자는 이동하의 말에는 대꾸를 하지 않고 얌전하게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즈 애미는 얌전한데, 저기 누굴 닮았길래 저릏게 머스마처럼 당차댜……

이동하는 커피를 마시면서 애자를 바라본다. 무언가 중요한 말을 하려고 일부러 찾아 온 것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 중요한 그 무엇을 말자가 알아서 안 될 일이라면 용돈을 올려달라거나, 고등학교 진학문제가 아닌 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언니, 아버지하고 말 끝나면 빨리 나와야 해. 나 배고프니까."

"그래. 바깥이 추우니까 멀리 가지 말고 사무실에서 난로 쬐고 있어. 금방 나갈테니까."

애자는 말자를 따라서 일어섰다. 말자가 나간 다음에 밖의 동정을 살피고 문을 잠갔다.

"대관절 먼 야기를 할라고 그릏게 요란을 떠는 거여. 문 안 잠가도 여길 들어 올 직원들은 읎는데……"

"아버지 이번 오 월에 민의원 선거 나갈 계획이세요?"

애자가 이동하의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누가 그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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