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이기적인 생각 때문이다

라틴어 법격언에 "pacta sunt servanda" 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하면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라는 것으로, 국제법상의 국가간 약속은 물론 사법상 계약의 구속성에 대해 말할 때 흔히 인용된다. 그렇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지킬 수도 있고,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면 그것은 약속이라 할 수 없다. 항차 국가의 지도자가 한 약속에 있어서랴. 지도자가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면 안 된다. 누구도 그 지도자를 믿지 않을 것이며, 그가 하는 모든 통치행위 내지 정치행위는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지도자가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백성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할 수 없고, 지도자가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약속을 저버리면서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데모하는 군중을 해산할 수 없다.

작금의 세종시를 둘러싼 논쟁을 지켜보면서 위의 "pacta sunt servanda" 라는 법격언을 생각한다. 이미 지난 5-6년간 500회 이상의 공청회와 세미나를 거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사상초유의 국가정책에 대한 최고헌법기관의 판단을 거쳐 여야합의로 특별법으로 확정되어 9부2처2청의 중앙행정관청이 이전하며 인구 50만의 자족형 특별시로 만들기로 확정되었을 뿐 아니라, 그 예산의 20% 이상이 이미 투자되어 공사가 진행되고 있고, 이러한 국가적 중대사 앞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땅과 재산을 모두 양보하고 떠난 원주민들 앞에, 이 정권은 약속을 지키지 못하겠단다. 그리고 내세우는 이유가 이미 수백차례 걸러졌던 행정불편과 자족성 문제다.

그러니 묻고 싶다. 국토의 11.8% 밖에 안 되는 지역에 전 인구의 50%가 몰려살고, 제조업 50% 이상, 공공기관의 90%가 몰려있는 나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주거비, 교통비, 환경개선비 등등 천문학적인 경비, 차를 타고 나가면 불과 수킬로미터 부터 짜증나는 교통체증이 일상화된 수도, 이런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어디 있는가. 상대적으로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은 형편없이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국가의 경쟁력은 수도권의 대도시화로 경쟁력을 확보할 때 가능하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수십년간 지속되어 왔던 수도권공장총량제, 수도권 그린벨트를 풀었다. 그리고 지난 6월까지도 원안대로 이행하겠다던 약속을 저버리고 세종시건설을 백지화 하려 한다.수도권만 챙겨도 정권보신에는 문제가 없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 때문이 아니라면 그 무슨 이유가 있단 말인가.

국토의 균형발전을 통해 고루 잘 살아보자는 의지에서 발현된 국가의 중요한 국책사업인 세종시 건설. 정말 국가의 지도자라면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하고, 모든 국민의 행복한 삶을 생각하여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약속한 것을 지켜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자시절부터 지난 6월까지 20여 차례 세종시의 차질없는 건설을 약속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충청도 출신 국무총리를 내세워 자신은 한 마디 사과도 없이 백지화를 시도한다.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정말 자신의 약속이 잘못된 것이어서 바꾸어야 한다면, 국민 앞에 나서서 떳떳이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밝히고 사과해서 국민의 이해를 구하면서 정책전환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수십년래의 문제로서 5-6년 이상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확정하여 추진되어온 중요국책사안을 불과 2-3개월 안에 전면백지화 하고 다른 안으로 수행하겠다면 누가 인정할 수 있겠는가.

정치인의 약속은 약속이 아닌가. 정치인은 거짓말쟁이라도 상관없는가. pacta sunt servanda! 다시 한 번 촉구하노니, 이명박대통령과 현정권은 국민과의 약속인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건설을 특별법에 정한 대로 속히 이행해야만 한다./유재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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