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2장 달 그림자

▲ <삽화=류상영>
이동하는 애자의 맹랑한 질문에 대답을 하고 싶지 않았다. 담배를 눌러 끄며 일어서서 화재를 돌렸다.

"아버지, 제 말부터 대답을 해 주세요. 정말 들롄가 하는 그 여자 정리 하실거죠? 아버지 말씀 믿어도 되는 거죠? 어서 대답해 주세요. 네?"

이동하가 두리뭉실 넘어가려는 기미가 보이자 애자가 벌떡 일어섰다. 이동하의 앞을 가로 막으며 손을 잡았다. 애자는 들례 때문에 늘 얼굴에 그늘이 져있는 옥천댁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떡하든 이동하의 마음을 돌려야 옥천댁이 예전의 웃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간절한 얼굴로 이동하를 바라봤다.

"및 번이나 말을 해야 애비의 말을 믿겄냐?"

"아버지, 저는 아버지가 저를 실망시키지 않을 줄 알았어요. 고마워요 아버지, 정말 고마워요."

이동하가 짜증이 난다는 얼굴로 물었다. 애자는 이동하가 아직 마음을 결정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동하의 자존심을 건드려서 안 된다는 생각에 품에 안기며 혼란스러운 눈물을 흘렸다.

"애비한테 고맙다는 말하는 거 아녀. 자 얼릉 나가자."

이동하는 계장들하고 약속을 취소하고 딸들과 함께 태화루로 갔다. 딸들에게는 야끼만두와 자장면을 시켜주고 자신은 고량주를 반주 삼아 짬뽕을 먹고 곧장 들례네 집으로 갔다.

"승철이는?"

들례는 이동하가 대문 앞에 도착하는 기척에 뛰는 걸음으로 나가서 문을 열어 주었다. 이동하는 들례의 얼굴은 바라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승철이를 찾았다.

"안직 안 왔슈."

이동하가 혼자 와서 승철이를 찾는 이유는 모산에 들어가기 위해서이다. 들례는 이동하가 또 모산에 들어가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쓰렸다. 그러나 내색을 했다가는 술 한 잔 한 것 같은 이동하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올 리 없다. 그렇다고 쓸개도 없는 여자처럼 살랑거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기도 싫었다. 표정 없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대청마루 앞에서 멈췄다.

"오늘 반굉일이라서 과외공부는 오전까지만 하는 날이잖여. 과외공부 끝났으믄 빨리 집으로 와야지 왜 여즉 안 오능겨?"

승철은 요즘 방학이지만 집에 없다. 장래 대전에 있는 중학교에 보내려면 공부를 잘해야 된다는 생각에 서울에서 중앙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에게 과외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동하는 구두를 벗고 대청마루로 올라서면서 들례를 바라보지 않고 물었다.

"또, 만화가게에 들린 모냥유. 지가 쫓아가서 데리고 올까유?"

들례는 이동하가 밉다고 승철이까지 미워 할 수는 없었다. 차마 승철이 만화방에 있을 거라고 대답을 할 수가 없어서 춘임에게 눈짓을 보냈다. 춘임이 주늑 든 목소리로 이동하에게 물었다.

"그려, 시방 모산에 들어가야 항께 빨리 오라고 햐……내후년이믄 육 학년이 되는 놈이 공부 열심히 해서 난중에 대전에 있는 중핵교 갈 생각은 안하고 만화책만 보고 있으면 워짜겄다는거여."

"저 왔습니다."

이동하는 대청마루에 올라서려다 양철대문이 열리는 소리에 뒤돌아섰다. 승철을 찾으러 나간 춘임이 나가자마자 승철의 과외선생인 신종훈이 들어서고 있었다.

"오늘은 반굉일이잖유?"

들례가 신종훈과 이동하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부면장님 마침 계셨구먼유. 이 시간에 오면 부면장님이 계실 것 같아서 찾아 왔슈. 저, 영장이 나왔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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