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2장 달 그림자

▲ <삽화=류상영>

우리가 클 때만해도 보통학교만 졸업해도 면서기 해 먹는 데는 문제가 읎어.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이거여. 너는 집구석에만 처 박혀 있는 방안통수라서 세상이 워치게 돌아가는지 모를껴. 요새는 각 동리 마다 중학생 한 둘 읎는 집이 읎어. 당장 저녁에 처먹을 양석도 읎는 집구석들도 자식새끼 앞날을 생각해서 장리쌀을 내는 한이 있더라도 중핵교를 보낸다 이거여. 당장, 우리 동리만 해도 중학생이 및 명인지 알어? 그 머셔. 구장 둘째 아들하고, 태수 큰 아들에……두 명인가? 아녀, 길동이 딸내미도 있구먼. 니가 알다 싶이 우리 동리가 크기나 하냐, 손바닥만 한 동리에서 중학생이 장장 시 명씩이나 된다는 거여. 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햐? 장차 승철이가 중핵교 갈 나이가 되믄 어중이떠중이 죄다 중핵교를 보낸다고 설칠거잖여. 그람 워틱해야겄어?"

이동하는 점심 먹을 때 마신 고량주의 취기가 알딸딸하게 오르는 것을 느끼며 가끔 방바닥을 쳐가며 말했다.

"시방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공부를 해서 난중에 서울에 있는 고딩핵교는 보내야 된다는 거겠쥬?"

"내 말을 옳게 알아듣고 있구먼. 바로 그거여, 그랑께 정신 바짝 차리고 승철이를 보살피란 말여……"

"알았슈. 월요일 부터람도 지가 절대로 만화방에 못 가게 할 모냥잉께 한븐 믿어 보셔유."

"중요한 거는, 승철이가 출세를 못하면 니 앞날도 뻔할 뻔자라 이거여. 더 이상 깊은 말은 안 할팅께 알아서 햐."

이동하는 밖에서 승철이와 춘임이 들어오는 기척에 입을 다물고 옆으로 돌아앉았다. 들례는 이동하의 말이 묘한 여운으로 가슴 속에 갈아 앉는 것을 느끼며 가만히 미소를 짓는다.

3.서울 하늘 밑에서

얼굴을 스쳐가는 바람이 무거워 진 것을 보니 밤이 제법 깊어진 것 같았다.

골목 앞으로 어깨를 마주하고 이어져 있는 단층짜리 가게도 징검다리처럼 드문드문 불이 꺼졌다. 불이 꺼져 있는 연탄가게며 철물점 라디오수리점, 사진관, 이발소, 등과 다르게 '인천양곡상회'는 문이 닫히지 않았다.

"저 집이 틀림읎지?"

골목 안에서는 바람이 불 때 마다 시큼한 시궁창 냄새가 풍겼다. 전봇대 뒤에 있는 두 사내 중에 키가 큰 사내가 작은 사내에게 물었다.
"틀림읎어. 형이 거기 들어가서 쌩고생하고 있는 동안 내가 서상철 그 새끼 죽여 버리려고 여길 백번도 더 와 봤단 말여."

경훈은 시훈이 묻는 말에 이가 갈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며 인천양곡상회를 노려본다. 삼십 촉짜리 알전구가 천장에 붙어 있는 가게 안에 사람은 없었다. 벽 쪽으로 쌀가마니가 이십여 가마 쌓여 있고, 판자로 만든 한평 크기 통에는 쌀이며 보리쌀 조나 콩 같은 곡식이 수북하게 담겨있다. 바람이 쌩하니 불면서 기와집 지붕에 비스듬하게 서 있는 양철간판이 덜덜 떨리는 소리가 길 건너까지 들려왔다.

"사람을 죽이는 건 큰일 날 짓여. 저런 쓰레기 하나 죽이고 귀한 목숨을 버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란 말여. 그랑께 어뜬 일이 있드라도 쥑이지는 말란 말여."

"그릏게 똑똑한 사람이 워티게 누명을 쓰고 십팔 개월 씩이나 징역을 살았댜."

"너도 임마 형사 책상 앞에 앉아 봐. 말끝마다 귀통벡이를 후려갈기는 건 참을 수 있어. 똑바로 말하라고 발로 차고 별 짓 다하는데 이길 장사가 있어?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닝께 병신이 안될라믄 강도질을 했다고 자백을 할 수벢에 읎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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