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병익
청주교육청 학무국장
아무도 눈길주지 않던 베란다 화단 구석에 /때 아닌 들깨가 싹을 들어 올렸다. /녹색으로 늘어선 동양란에 준 물 동냥으로 살아 온 가련한생명 하나 /아차 이를 어쩌지 /창문을 열자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톡톡톡 빗방울 /잎자루 날개처럼 벌리고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대어 서서 /감춰진 씨앗을 부른다. /필자의 시 '싸가지'의 전문이다. 본래, 싸가지는 버릇이란 뜻의 전라도 사투리로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과 섞어쓰고 있다.

어렷을 적, 김장철이 오면 꽤나 실한 무우를 광주리에 수북하게 담아놓고 '보약'이라며 껍질 벗겨 입에 넣어 주시던 어머니의 손끝은 참으로 우리 형제의 마음을 살찌운 영양이었다. 그 기억으로 '트림'이란 시를 빚었다./의사 면허증 없어도 /등 두드려 /용케 트림을 끌어내는 어머니 /동치미 담그는 날, 잘 생긴 무우 골라/ '가을 인삼'이라며 입가가 벌겋도록 먹이고 /트림을 막던 어머니 /숨 멈추고 참다가/ 그만 모르는 사이"그윽" /효험은 멀어지고. "트림하지 말아라" /첩약도 알약도 아닌 것으로 보약을 주셨다. / 동네 어른들께선 마주한 아이들에게 '싹수가 있다'는말씀을 자주 해주셨다.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를 일컫는 말임을 나중에 알고서야워낭 소리처럼 은은한 울림의 버팀목 쯤 챙기게 됐다. 곰곰 되짚어 봐도 언어가 거칠거나 행동이 포악하여 손가락질 당하는 또래를 찾아볼 수 없었다. 가끔 책상 위에 경계선을 그어 휴전선 같은 수호를 하거나 땅따먹기 도중 규칙이 제대로 조율되지 않아 옥신각신하던 일 빼면 학생사안은 낱말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아이들 인성을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내 자녀는 괜찮다며 친구에게로 오염원을 돌린다. 문제는 바로 성인인데 청소년만 나무라고 있다. 가르침의 장애를 까맣게 모른 채 학습장애로 몰아세우는 건 아닌지 헷갈린다. 기름진 밭을 만들기 위해해가 저물도록 목에 건 워낭을 박자삼아 쟁기를 끄는 소의 발자국 뒤를, 다시 호미질로 다듬는 정성어린 농심을 경험해 보았는가.솔직하지 못한 사회에서 거짓을 배우고 얼굴 바꾼 화장이 싸움으로 비롯되는 단편적인 예 하나로도 산은 저만큼 하늘 가렸는데 아이들 눈엔 뵈는 것만 하늘인줄 순수 그 자체를 어찌하려나. 동심회복은 어른들의 마음씻기 부터 우선돼야 가능한 답이려니.

큰 나무아래 앉아 쉬면서 그늘의 고마움을 느끼듯, 요즘들어 부쩍 하늘을 나는 새를 부러워하며 또 다른 각오까지 여러 쪽을 넘긴다. 하루가 다르게 부쩍 공교육이라는 엄청난 무게와 주문 속에서 휘어진 지팡이라도 찾아야할 두려움 때문일까?세상은 정말 해괴망칙한 일들로 소용돌이친다. 달포 전, 멀쩡하게 길가던 어린이를 걷어차고 낄낄대며 도망치는 노란 싹수의 동영상에 아직 펑 뚫린 가슴은 꼭 총맞은 것 같은 상처로 남아있다. 피해아인 괜찮은 건지, 부모의 치유도 필요할 텐데......어쩌자고 우리사회의 품격이 이처럼 바닥으로 굴렀는지 말문부터 막힌다.

유행처럼 비슷한 비행이 또 꼬리를 문다.어처구니 없는 인성실조를 두고 한결같은 훈수가 터진다.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더 많은 교육을 받지만 보편과 특수 한계를 느끼게 되고, 일등이란 지극히 한정된 자의 소유임에도 불구하고 우린 그것에 매달려 다수인 그 이하를 외면한 실수에서 비롯된 건 아닌지 누가누구를 나무라기 전, 반성이 앞선다.단체경기에서 덜 중요한 위치가 따로 없음을 지난 달 열광했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의 마지막 한방으로 증명했듯이 교육에서도 학생과 선생님 학부모 어느 한쪽도 느슨하면오히려 어떤 경기보다타격이 더 클수 밖에 없는 엇박자를 그려낸다. 그러므로 자녀나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동력을 달구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소통이 사라진 가정은 이미 가족의 힘도 잃은 꼴이며 웃음이 없는 학교는 교육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라면 지나친 아집일까? 거울은 혼자 웃을 수 없고 더구나 혼자 말해봤자 대꾸도 없다.

학교장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담임에게 이어지고 곧바로 반 아이들에 소통으로 전파된다. 묘약의 처방전을 내리기란 참으로 어렵지만, 비록 조금 소란하더라도 개성과 고집이 존중되어 학교에 가면 맞장구 쳐주는 선생님의 유혹에 빠질 분위기라면배움과 가르침의 문화 모두 효험을 볼 수 있는모델일 것이다. 어느 음식점에 여자아이가 눈먼 아버지 손을 잡고 들어와 주인을 감동시킨 효행에 그래도 희망은 불씨로 남아 지펴짐을 자위한다. 주인은 자리가 예약되었으니까 얼른 먹고 일어나라며 순대국물 갖다 주었는 데, 그 소녀는 '아빠, 내가 먼저 새우젓으로 간을 맞출게' 하더니 자기 국에 있는 고기와 순대를 모두 건져 아버지 그릇에 넣어 드리고는 '빨리 자리를 비워야 한다니까 아빠가 국을 뜨면김치 얹어드릴게요'하면서 앞못보는 아버지 식사가 끝날 때가지 반찬을 올려주던 아직 소녀티를 못벗은 딸 모습이 마치 심청의 환생처럼 느껴져, 자기반성과 함께 바가지로 눈물 쏟아냈다는골목음식점 주인 일기 한편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싹수'와 교육의 아름다운 권위가 보인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