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류상영>

시훈이 징역을 살고 있는 동안 경훈은 뒷바라지를 하느라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고 한다. 남대문 시장에서 등짐을 날라주는 짐꾼 노릇에다, 남산 계단 밑에서 번데기 장수도 하고, 밤에는 찹쌀모치 장사에, 비가 오는 날은 우산도매상에서 비닐우산을 받아다 거리에서 뛰어 다니며 팔기도 했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한 덕분에 먹고사는 것은 걱정이 없었지만 지난 1년 반 동안 추석이나 설 때 고향에 가지 못했다. 혼자 내려가면 아무래도 부모님이 이상하게 생각을 할 것 같아서 아주 연락을 끊고 살았다. 동네가 큰 것도 아니다. 겨우 삼십 여호 남짓한 동네에서 자식들이 명절 때 귀향을 하지 않았다면 부모님은 부끄러워서 고개도 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시훈을 억울하게 교도소로 보낸 서상철이라는 놈을 용서 할 수가 없었다.

경훈이 걸음을 멈춘 곳은 서너 평 남짓한 허름한 선술집이다.

송판으로 짜 맞춘 술청에는 굵은 소금이 담긴 접시 하나와 꽁초가 수북한 재떨이가 전부였다. 경훈과 시훈은 말없이 술청 앞에 서서 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술청과 방문 사이에 있는 때 묻은 광목 커튼이 펄럭이면서 주인 여자가 나왔다.

뚱뚱한 몸에 때늦게 군용야전잠바를 걸친 주인은 말없이 재떨이에 있는 꽁초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대접 두 개를 시훈과 경훈 앞에 각각 갖다 놓고 깍두기 접시를 술청에 올려놓았다.

"쇠주로 한 대포씩 줘유."

시훈은 말없이 경훈을 바라본다. 경훈이 대접을 앞으로 밀어내며 작지만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두부도 한 모 내놔 봐유."

접시에는 왕소금이 담겨있다. 대포로 술을 마신 손님들이 안주로 먹는 소금이다. 경훈은 손으로 왕소금 몇 개를 입안에 툭 던져 넣으며 무겁게 말했다.

"자시고 싶은 만큼만 자시고 계산하셔."

주인이 작은 양재기 두 개와 한 되짜리 소주병을 술청 위에 올려놓았다. 종이를 뚤뚤 말아서 마개를 만들어 놓은 한 되짜리 소주병에는 소주가 절반 정도 차 있다.

"비가 올란가?"

시훈은 말이 없었고 경훈이 긴장을 감추려고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히 떠 있는데도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주인은 묵묵히 연탄화덕 위에서 끓고 있는 물에 두부를 담갔다가 꺼내서 접시에 반듯하게 썰어 놓았다. 쪽파와 고춧가루를 썰어 놓고 참기름을 살짝 뿌린 간장과 배추김치를 술청에 올려놓는다. 물 묻은 손을 야전잠바 앞에 걸친 앞치마에 문지르며 더 주문할 것이 있느냐는 얼굴로 경훈을 바라본다.

"됐슈. 마실만큼 마시고 계산 할팅께 들어가 보슈."

"경훈아, 사람 맘이 참말로 간사하기는 간사한 거 가텨. 어지께만 해도 생두부를 쳐다보기도 싫드니만 시방 봉께 맛있게 보이는구먼."

주인이 길게 하품을 하며 커튼 뒤로 사라지고 난 후였다. 시훈이 젓가락을 들면서 목이 잔뜩 잠긴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지께는 맨 두부를 먹응께 목이 맥혀서 맛이 읎었겄지. 그라고 십팔 개월 만에 햇빛을 봄서 두부가 눈에 뵐 리가 읎었겄지."

경훈은 시훈의 양재기에 먼저 소주를 따라주고 나서 자기 앞에 있는 양재기를 채웠다.

"얼음이 둥둥 뜨는 찬물을 마신 것처름 속이 짜르르 하구먼."

"한잔 더 할텨?"

"이따 하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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