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3장 서울 하늘 아래서

▲ <삽화=류상영>
"그려, 그러는기 좋을 껴. 형 주량 모르는 건 아닌데 만에 하나 실수를 하믄 또 다시 징역 들어 갈 수도 있잖여."

"목소리 죽여. 밤 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고 했잖여."

시훈은 징역이라는 말에 등골이 섬뜩해지는 것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별빛이 은은하게 내려앉고 있는 거리는 텅 비어있다. 커튼 안쪽의 인기척에 귀를 기울인다. 주인여자는 금세 또 잠이 든 모양이다. 코 고는 소리가 가볍게 들려온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된다는 얼굴로 속삭였다.

"좌우지간 형이 그 안에서 고생한 대가는 받아 내야 햐. 안 그라믄 저 죽고 나 죽는 거지 머."

경훈은 양재기를 들었다. 절반 정도 마시고 나서 젓가락으로 두부를 집었다. 간장에 척척 무쳐서 입 안 가득 넣고 씹으며 허공을 노려본다.

"근데, 돈을 뺏는 거는 좀 그릏잖여. 그냥 죽도록 패주기만 하믄 안 될까?"

경훈이 서상철에게 복수를 한 다음에 돈을 뺏자고 제안을 했었다. 그 때는 그래야 될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던 시훈이 귓속말로 속삭였다.

"형은 안직도 서울사람 될라믄 교도소에서 십년 은 썩어야 햐. 형이 집짓는 데서 일을 하믄 하루에 못 받아도 오백 환은 받을 거 잖여. 한 달에 스무 날만 잡아도 만 환이여. 일년이믄 십이만 환이고. 반 년을 더하믄 십팔만 환이여. 그 놈 때문에 그 돈도 못 벌고 고생만 직사하게 해 놓고서 억울하지도 않응겨?"

"그 생각만 하믄 시방도 이가 갈리지. 그란데, 거기 돈이 참말로 있기는 한 거여?"

시훈은 처음에도 그랬던 것처럼 경훈의 말을 듣고 나니까 그냥 혼만 내주고 나오는 것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제 그냥 나오자고 했느냐는 얼굴로 속삭였다.

"형 쌀가게 안에 있는 가마니 못 봤남? 어쩔 때는 쌀가마니가 시방 보다 더 많을 때도 있어. 형이 낮에 안 와봐서 모르는 모냥인데 좌우지간 배달하는 사람 둘이 종일 바쁘게 배달을 하는 걸 보믄 장사가 보통 잘 되는 거시 아닌 거 가텨."

"배달하는 사람도 있단 말여?"

"두 명씩이나 있어. 한 명은 내 나이 또래고, 또 한명은 서른은 넘어 보이드라. 아침 일찍부터 배달을 하고 캄캄해지면 퇴근을 항께 시방은 서상철 그새끼 혼자 있을껴."

"식구들은?"

시훈은 양재기 술을 모두 비워버리고 스스로 잔을 채웠다. 소주가 양재기 절반 정도 차 오르는 것을 본 경훈이 그 정도만 마시라는 얼굴로 술병을 뺏는다.

"그 새끼 여핀네가 낮에 가끔 오는 걸 보믄 살림집은 따로 있는 거 가텨. 그래서 내가 한번 뒤를 쫒아가 봤어. 여기서 얼마 안 먼 곳에 살고 있드라. 저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 새끼네 집이 있어. 자식들도 둘이나 있드라, 남매."

"더 이상 알아 볼 필요도 읎겄구먼."

시훈은 양재기를 든 손이 가볍게 떨리는 것을 느끼며 허공을 노려본다. 경훈의 말대로억울하게 일 년 반씩이나 헛 징역을 살았으면서도 복수할 생각을 포기한다면 서울 생활을 포기하고 집으로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미친개에게 물린 셈치고 그냥 넘어가면 또 언제 어느 시에 억울하게 모함에 걸려 징역을 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기필코 복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어금니에 지그시 힘이 들어간다.

"오늘 장사 시마이유. 댁들이 어딘지 모겠지만 조금 있으면 통행금지 예비 싸이렌이 불 시간이니까 빨리 서둘러서 들어가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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