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3장 서울 하늘 아래서
| ▲ <삽화=류상영> |
가볍게 코를 골며 자는 줄 알았던 여자가 커튼을 들추고 모습을 드러냈다. 시훈이 형제는 주인여자가 하품을 섞어 하는 말을 듣고 서둘러 선술집에서 나왔다.
꽃샘추위를 동반한 4월의 밤바람은 서늘했다. 옷깃으로 파고드는 바람이 차가왔으나 경훈은 큰일을 앞두고 있다는 긴장감에 춥다는 걸 느낄 수가 없었다. 말없이 담배를 피우며 인천상회가 있는 곳으로 갔다.
"형, 시방 쳐들어 가믄 딱 맞겠구먼."
인천상회 앞에서는 서상철이 문짝을 닫고 있는 중이었다. 경훈은 몇 분만 늦게 왔으면 오늘 일이 허사가 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다급하게 말했다.
"분명히 저 자식 혼자 있는 거여?"
시훈은 서상철이 문짝을 하나만 남길 때까지 기다리며 연거푸 담배연기를 빨아 들였다. 필터가 없는 담배 끝 부분이 축축하게 젖으며 종이가 찢어졌다. 꽁초를 땅바닥에 버리고 군화를 신은 발로 짓눌러 버렸다.
"내가 한두 번 확인한 기 아녀. 날따라 와."
경훈은 불이 붙은 꽁초를 땅바닥에 힘껏 내려쳤다. 어둠 속으로 담뱃재가 불똥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쳐다보지 않고 인천상회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쌀을 사러 왔수?"
삼십대 후반의 서상철은 마지막 남은 문짝을 문틀에 끼우기 위해 들고 있다가 가깝게 다가오는 경훈을 보고 슬그머니 문짝을 내려놓았다.
"뒈지지 않을라믄 빨리 문짝을 들어. 빨리!"
"다……당신 누구야?"
서상철은 경훈이 품에서 꺼낸 칼로 옆구리에 대는 순간 금방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버렸다.
"날 벌써 잊어 뻐리지 않았겄지? 니 놈 때문에 억울하게 심팔 개월 동안이나 옥살이를 한 장시훈이여?"
시훈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서상철을 노려보았다.
"시……시훈이 아녀?"
서상철이 들고 있는 문짝을 떨어트리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씨팔, 빨리 들어가. 형 어여 문 닫아."
경훈은 서상철의 어깨를 움켜잡고 빠르게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알았어."
시훈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행이 행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끼며 가게 문짝을 들고 뒤 돌아서서 문을 닫았다. 문짝이 문턱에 걸려야 하는데 손이 떨려서 얼른 닫히지가 않고 덜커덩거렸다.
"형, 겁날 거 읎어. 이 새끼 죽여 뻐리고 우리도 죽으면 그만잉께."
"아, 알았구먼."
시훈은 경훈이 악에 받친 목소리로 나직하게 내 뱉은 말에 용기를 얻어서 문짝을 문틀에 맞추었다.
"자……잘못했어. 시훈이, 내가 잘못했으니 제발 목숨만 살려 주게 응."
서상철은 시훈이 문을 닫은 후에야 경훈이 들고 있는 과도를 자세히 바라봤다. 삼십 촉 불빛에 퍼렇게 번쩍이는 과도가 금방이라도 옆구리를 파고 들 것 같은 공포감이 가게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경훈의 얼굴에는 살기가 넘쳐흐르고 있다. 붉게 핏발이 서 있는 눈빛만 보는 것으로도 오줌이 지릴 지경이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