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소생되는 축복

파리의 생 쉴피스 성당의 벽에 그려진 들라크루아(eug?ne delacroix, 1798-1863)의 <천사와 싸우는 야곱>에는 겉옷과 창을 벗어던진 야곱이 커다란 날개를 달고 있는 천사와 한쪽 손을 맞붙잡고 온 힘을 다해 씨름을 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쌍둥이 형인 에서의 발목을 붙잡고 나와 '발목을 잡았다'라는 뜻인 '야곱'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그는 에서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고 그의 노여움을 싸서 오래 집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 에서를 위해 준비한 예물들과, 가족들을 모두 먼저 보내고 홀로 뒤에 남아 천사와 씨름을 하게 된다.

날이 새도록 야곱이 물러서지 않자 천사는 '나로 가게 하라'고 말한다. 자기를 죽이려는 형을 맞기 전에 천사와 밤새 싸워 이긴 야곱이 요구한 것은 강력한 군대나, 힘이나 승리가 아니라 뜻밖에도 단순한 '축복'이었다. 이때 천사의 대답 또한 흥미롭게도 야곱에게 이름을 '하나님과 싸워서 이긴 자'라는 뜻의 '이스라엘'로 바꾸라는 것이다. 전 인격적인 변화를 상징하는 이름을 바꾸는 의식을 통해 에서를 만나기 위해 야곱이 해야 할 준비는 다름 아닌 과거의 과오를 끊고 영혼이 소생되는 축복임을 말해준다. 이름의 변화를 통해 야곱은 형의 발목을 붙잡고 남의 축복을 가로채던 이기적인 인간에서, 자기를 극복하고 신의 축복을 붙잡으며 마침내 신의 뜻에 합하는 인간으로 변화된 것이다. 야곱의 천사와의 싸움은 긴 고통과 시련의 과정을 거쳐 축복의 극적인 순간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들라크루아의 그림은 어떻게 밤새도록 지속되는 힘든 기다림의 시간과 축복의 순간, 하나가 될 수도 그렇다고 둘을 떼어내어 생각할 수도 없는 두 장면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그림은 무엇보다도 우선 야곱이 천사와 손을 맞붙잡고 온 힘을 다해 서로를 밀며 밤을 새워 싸우고 있는 긴 시련의 과정을 보여준다. 대항하기 벅찬 상대 앞에서 절대 포기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싸움을 견디며 인내하는 시련의 과정은 고개를 숙여 천사의 가슴에 들이밀면서, 한쪽 다리를 들어 전력을 다해 온몸으로 상대방을 밀어붙이는 야곱의 활기 넘치는 자세와 그의 등에 뚜렷하게 새겨진 약동적인 근육의 결을 통해서 생동감 있게 표현된다. 뿐만 아니라 인물의 격한 몸부림만큼이나 힘차게 물결치는 옷의 주름의 선과 강렬한 색채를 통해 힘든 몸싸움의 긴장감 넘치는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런데 좀 더 그림을 음미해보면, 어둠이 걷히고 아침빛이 밝아올 때까지 끝나지 않는 싸움의 긴 시간 속에 있는 야곱의 모습 속에서 문득 천사를 붙잡는 손을 결코 놓아주지 않고 그를 보내지 않아 끝내 하나님과 합치되고, 막 이스라엘로 내적으로 변화되는 야곱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그림의 구도는 인물들을 화면의 중심이 아니라 천사가 있는 왼쪽으로 치우쳐진 곳에 둠으로써 지속된 싸움 끝에 천사가 야곱의 힘에 밀려 뒤로 물러나면서 야곱에게 축복을 줄 수밖에 없게 되는 순간에 다다랐음을 공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야곱의 등을 환히 비추고 있는 빛은 밤새 싸우고 어느새 날이 새는 것을 보고 천사가 야곱의 요구를 들어줄 때임을 시간적으로 암시해준다.

야곱이 천사와 밤새 싸우며 둔부의 뼈가 어긋나는 시련까지 참으며 집요하게 버티어온 인내의 지속적인 시간 속의 현재와 기나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과오의 과거로부터 단절시키고 내면을 변화시켜주는 순간의 현재,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모순적인 두 현재가 들라크루아의 그림 위에서 만난다. 이 그림은 끝없는 싸움의 지속과 인내 끝의 축복의 순간을 하나의 화면에 녹여내는 강렬한 감각으로 야곱이 체험한 영적인 변화의 극적인 감동을 전한다.

▲ 황혜영교수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