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3장 서울 하늘 아래서
| ▲ <삽화=류상영> |
"어이! 여기 빼갈 한 도꾸리 더 가져 와 봐."
"야, 얼릉 갖다 드려."
주방 뒤쪽에 있는 골방에서 남자의 굵직한 목소리가 새 나왔다. 신문을 보던 진사장이 고개를 들지 않고 팔꿈치로 뒤에 서 있는 병락의 배를 쿡 친다.
"시방 갖고 가유!"
병락이는 큰 소리로 대답을 하고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주방 안에는 나무 상자 안에 한 되짜리 유리병에 들어 있는 고량주가 짝으로 있다. 뚜껑이 연 흔적이 있는 한 되짜리 병을 꺼내서 손바닥만 한 호리병에 따랐다.
골방은 여러 개의 방을 지나서 주방 뒤쪽으로 꺾어지는 부분에 있다. 빛이 들어오지 않아서 어두컴컴한 골방문 반대편에는 주방으로 통하는 문이 있어서 시큼한 냄새가 풍긴다.
"여기 있슈."
병락은 가볍게 노크를 하고 방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모산 구장 황인술과 면사무소 강서기가 마주 앉아서 탕수육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 있다. 밖은 햇볕이 쨍쨍한 대낮인데 전등불 밑으로 보이는 황인술과 강서기의 얼굴에는 붉게 노을이 져 있다. 병락은 고량주가 들어 있는 호리병을 방 안으로 들여 놓고 추가로 주문 할 것이 없느냐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본다.
"야끼만두 한 접시 더 가져 와라."
황인술은 벌떡 일어서서 호리병을 들며 방문을 닫는다. 대낮에 독한 빼갈을 마셨드니 엄청 취하는구먼. 이라고 중얼거리며 강서기 맞은편에 앉았다.
"빼갈은 마실 때 뿐유. 여기서 한숨 자고 나면 금방 괜찮을뀨."
강서기는 엄지손가락 크기의 유리잔에 담겨 있는 고량주를 입 안에 톡 털어 놓고 능글맞게 웃는다.
"일만 읎다믄이야 성주옥에 가서 허리 띠 풀러 놓고 한잔 더 하고 싶지. 하지만 워디 그려, 나락씨도 물에 담가야 하고, 못자리도 맨들어야 하고, 모심을 논에 또랑도 쳐야 하고, 마늘밭에 물비료도 줘야 하고, 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녀. 강서기 만나는 일만 읎었으면 몸이 열 개라도 모질라."
황인술은 두 손으로 강서기 빈 잔에 고량주를 따라주고 나서 자기 잔도 채웠다.
"농사라는 거시 일을 할라고 팔을 걷어 부치면 일년 삼백육십오일뛰어 댕겨도 부족하쥬 머, 하지만 솔직히 구장님츠름 머리가 좋으신 분이 모산 꼴짜기 같은 디서 썪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유. 내 생각 같아서는 농사 때려 치시고 읍내 같은 디 나가서 장사를 하시믄 지대로 하실 거 가텨."
"난도 그른 생각을 한두 번 해 본기 아녀. 허지만 그 머여, 이거시 있어야 장사를 하든 학산으로 이사를 나오든 할 거 아녀."
황인술이 안타깝다는 얼굴로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서 강서기 앞에 내 보인다.
"어뜬 놈은 첨부터 돈이 있어서 장사를 시작하남유? 츰에는 여기저기서 빛내고 자갈밭 팔고 해서 쪼그만 가게 하나 읃어서 시작하다가 점점 불려나가서 가게도 불리고 집도 사고하는 거쥬. 우리 동리 사는 팔식이 형이 영동 우시장 근처에서 신발가게를 하는데 츰부터 번듯한 가게를 냈던 거시 아뉴."
"강서기 동리 팔식이 형이라믄 학산 장날마다 고무신 팔러 오는 사람 아닌가?"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