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가에 앉아 발을 씻는 향숙>

▲ <삽화=류상영>

"이까짓거라뉴? 요새 같은 춘궁기에 새참으로 고구마래도 먹을 행핀이 됭께 하늘이 쥐똥만하게 보이능개벼. 파랑새 한값 살 돈이믄 보리쌀을 반되 살 수 있슈. 보리쌀 반되면 우리 식구가 배 뚜드리고 먹을 수 있는 양식인데 그걸 연기로 날려 보냉께 워치게 가만히 귀경만하고 있을 수 있슈……으……응, 그래 목이 말라. 그람 물을 먹어야지."


상규네는 주전자 뚜껑에 물을 받아서 인자의 입에 대주면서 말을 계속한다.


"상규는 운동화가 걸레가 돼서 학교 갔다 오면 양발까지 빵구가 나서 즈녁마나 양빨 꼬매주기 바쁜데 애비라는 사람은 배짱 좋게 파랑새 담배만 피우고 있으니……집구석에 봉초가 읎으믄 또 몰라, 봉초는 및 봉씩이나 쟁여 놓고 있음서 툭하면 대단한 한량이나 되는 것츠름 갯주머니에 파랑새를 늫고 나오니……"


"한량이 워치게 하고 댕기는지 귀경이나 하고 한량 타령하믄 밉지나 않지. 갯주머니에는 돈 한 푼 읎이 제우 파랑새 한 갑 늫고 다녀도 한량이믄 우리 동리 남자들 죄다 한량 소리 듣겄구먼."


박태수는 풀 한 잎을 뜩어서 질걸질겅 씹으며 향숙이를 바라본다. 물장구를 치고 있던 향숙이 퍼질러 앉더니 냇물에 발을 담근다. 발을 씻는가 했더니 그게 아니다. 발을 담그고 가만히 물속에 잠겨 있는 발을 들여다보고 있다.


"지가 하고 싶은 말의 요지는 시방 당신이 암 생각 없이 파랑새를 피우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 이거유. 자식들 공부를 시킬라믄 피고 싶은 거시 있어도 참고, 마시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고,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아야 된다 이거유."


"그랑께, 내가 뭐라고 했어. 상규 중핵교 보내는 문제는 소값 부텀 갚고 나서 생각해 보자고 했잖여. 서방 말이라고는 개코츠름 생각하니께 중핵교 부텀 턱 보낸 주제에 먼 잔소리가 그릏게 많응겨?"


"츠! 언지는 농사꾼이라는 거시 전생에 죄가 많은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릏지 않다믄 똑같은 인간이믄서 공무원이나 장사 하는 놈은 탱자탱자 놀민서도 배 뚜드르고 사는데, 농사꾼이라고 해서 진종일 손톱이 빠지도록 일을 해도 나물죽만 먹으며 살리는 읎다. 전생에 지은 죄는 내가 다 짊어지고 살팅께 자식새끼들은 절대로 손구락에 흙을 묻히게 살게 하지는 않을끼다. 그기 부모의 도리다. 세상이 두 쪽 나는 한이 있드래도 내 자식은 농사꾼 안 시킨다고 큰 소리 치드니……"


"이 여핀네가 엊지녁에 처먹은 나물죽이 안직 소화가 안됐나. 멀쩡한 대낮부터 왜 헛소리여. 내가 바로 요 자리에서 아까 말하고 나서 담뱃불도 끄지 않았구먼. 근데도 그새 내가 한 말을 잊어 뻐링겨?"


"머라고 했남유?"


"빚부텀 갚고 나서 중핵교 보내도 늦지 않는다도 했어. 안 했어?"


"츠, 난 또 머라고. 공부도 다 때가 있는 벱유. 지 때 공부를 하지 않으믄 그만큼 머리가 녹이 슬어서 심이 든다 이거유. 그래서 남들도 지 때 공부를 갈킬라고 기를 쓸고 살잖유. 남들도 다 갈키는 공분데 우리라고 못 할 이유가 머가 있슈, 인자야 씹지도 않고 그릏게 많이 먹으믄 목이 멕히잖여. 물 좀 먹어, 지지바가 고구마를 츰 먹어보는 것도 아니고 즘심을 안 먹은 것도 아닌데 찬찬히 좀 먹지……"


인자가 입 안에 고구마를 꾸역꾸역 집어 넣는 것을 본 상규네는 주전자 뚜껑에 물을 받아서 먹이며 등을 두들겨준다.


"좌우지간 먼 수를 내도 내야지 시방츠름 대책읎이 살다가는 올개 소 값을 못 갚아. 만약 소 값을 못 갚는다믄 보통 일이 아녀. 상대가 면장님이 아니고 다른 이라믄 가서 사정이라도 해 보겄지만,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을 영감이라서 소를 도로 달라고 할 지도 모르지."


"이이 좀 봐. 집안의 가장이라는 사람이 생각하는 거시 왜 그리 못났나 몰라. 안직 논에 모도 안 꽂았는데 벌써부터 꼬리 내릴 생각만 하고 있응께 내가 누굴 믿고 살아야 되는겨.좌우지간 내가 먼 수를 쓰드라도 소 값은 올해 안 넘기고 해결 할팅께 당신은 내가 시키는 데로 하지만 하믄 돼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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