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4장 자운영 한 송이 꺾어 들고
| ▲ <삽화=류상영> |
꼬막네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고 나서 윤길동 앞에 있는 파랑새 담배를 끌어 당겼다. 담배를 입술 끝에 물고 치익 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성냥을 켜서 불을 붙였다.
부면장 아들한테 가야 할 살煞이 엉뚱한 데로 간 모냥이구먼.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둥구나무 근처에서 혼절을 했었다면 살煞을 맞은 것이 틀림없다. 작년 11월에 들례와 함께 은젓가락 한 쌍을 둥구나무에 박아 놓은 적이 있다. 효과가 없어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둥구나무한테 고사를 지냈더니 둥구나무 다리에 박힌 젓가락도 빼내지 않고 고사를 지냈다고 목신木神이 저주를 내린 것이다. 원래 주술대로라면 다리를 절게 되거나 벙어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향숙의 몸에 원래부터 강한 신기神氣가 도사리고 있어서 육신을 해치는 살을 막아 낸 것 같다. 향숙의 몸을 지키고 있는 신이 살을 맞고 동動했으니 어쩔 수 없이 신굿을 해주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 일을 워쩌면 좋댜! 향숙의 몸에는 원래 신기가 있었으니 언젠가는 신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살을 맞기 전 까지는 얌전히 학교에 다닌 걸 보면 아직은 신딸이 될 시기는 아니라는 걸 생각하면 어린 것이 불쌍하기 짝이 없다.
꼬막네가 과거를 더듬고 있는 시간에 윤길동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절벽 난간에 서 있는 기분으로 연거푸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허!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먼.
윤길동은 햇빛이 투영되고 있는 창호지문을 바라본다. 누렇게 변한 창호지 문이 찢어진 곳에 종이를 군데군데 오려 붙여 붙여서 문종이가 누더기 삼배치마처럼 보인다. 자식이 많은 것도 아니다. 달랑 딸 하나 있는 것이 신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나니까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보통일이 아녀 참말로 이 일을 워쩌면 좋댜.
몸이 아픈 병이라면 집이라도 팔아서 병을 고치면 그만이다. 집을 팔아서라도 안 되면 몸뚱아리라도 팔아서 외동딸의 병을 고쳐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병이라는 것이 백약이 무효하다. 들은 풍월에 의하면 신병은 오직 내림굿이라는 신풀이를 해 줘야 병이 씻은 듯이 낳는 다는 것이다. 내림굿을 해서 신병까지 깨끗이 낳는 것도 아니다. 그 다음부터 정상적으로 학교에 다닐 수만 있다면 아무리 많은 돈이 들어도 내림굿이 아니라 더 한 굿도 해 줄 수가 있다. 하지만 내림굿을 하게 되면 신어머니를 구해서 평생 무당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점을 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것이 부채춤을 추고 꽹과리를 두들기고 징을 두들긴단 말이지.
고개를 슬그머니 돌려서 꼬막네를 바라본다. 담배를 피우는 꼬락서니도 점쟁이 아니라고 할 까봐 티를 내고 있다. 입술 한쪽 끝으로 담배 연기를 훅 내뿜고 있는 얼굴은 조막만하다. 새치름한 눈빛으로 벽장 쪽을 바라보고 있는 눈매는 어딘지 모르게 섬뜩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어염집 여자라면 남부끄러워서라도 입지 못할 색동저고리를 입고 있는 어깨는 향숙이와 엇비슷해 보일 정도로 좁고 둥글다. 키도 어린 향숙이 만하게 보여서 훅 하고 힘껏 불어 재끼기라도 하면 뒤로 벌러덩 나자빠질 것 같다. 그래도 굿을 할 때는 신의 힘을 빌려서 통 돼지 한 마리를 반월도로 찔러서 불끈불끈 들어 올린다는 소문이다.
아녀, 시방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거시 틀림읎어. 딴 아도 아니고 향숙이가 신병이 걸렸다는 것은 분명히 꿈에서나 있을 일여.
내 말을 믿을 테면 믿고, 믿고 싶지 않으면 안 믿어도 좋다는 얼굴로 도도하게 앉아 있는 꼬막네의 조막만한 얼굴에 향숙의 얼굴이 겹쳐진다. 향숙이는 한마디로 예쁘다. 내 자식이라서가 아니다. 산골에 살면서도 피부는 서울 사는 학생들처럼 뽀얗고 곱다. 여태까지 키우면서 없는 살림이면서도 손가락 끝에 흙 한 점 묻히지 못하게 하고 키웠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