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한국선수로는 처음 금메달을 거머 쥔 유도 최민호 선수가 이런 말을 했다. "금메달을 따기 전 각종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쏠리는 관심, 시선을 보며 '나도 어떻게든 메달, 그것도 금메달을 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메달. 말만 들어도 기분 좋고 설렌다. 보는 사람이 그럴진대 직접 피땀 흘리는 훈련을 하며 온갖 어려움을 헤쳐 온 선수들에게는 더 이상 바람이 없는 지상 목표다. 금메달은 색깔만 금빛이 아니라 그 자체로 국민을 결집 시키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사회 곳곳의 웬만한 고민, 어줍잖은 고충은 메달 바람에 파묻힌다.
그런데 문제는 '모 아니면 도'식의 우리 국민성이다. 은메달, 동메달은 알아주지 않고 모든 게 금메달로 쏠린다. 간발의 차, 1점이 뒤져 은메달에 머물면 그냥 은메달이다. 그걸 목에 걸기위해 흘린 땀, 고생은 인정해주지 않는다.
은메달이나 동메달 따는 것도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 우리보다 '올림픽은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다'는 것에 더 익숙한 선진국은 참가하는 자체가 좋고, 거기에 메달까지 딴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분위기다. 굳이 금메달이 아닐지라도 세계에서 2, 3등에게 주어지는 은·동메달도 감지덕지다.
그래서 시상식을 보더라도 은·동메달을 딴 선진국 선수들은 좋아서 팔짝팔짝 뛴다. 우리도 좋아하지만 외국선수들에 비해 만족해하는 정도가 조금 뒤지는 인상이다. 이 모든 게 금메달 하나만 바라보는 국민정서 때문이다.
지난 5일 '피겨여왕'김연아 선수가 2009~2010 시즌 isu(국제빙상연맹)피겨 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여자싱글에서 우승했다. 피겨라는 종목 특성상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트로 나뉘어 합산 점수로 순위를 매겼다. 이 과정에서 김연아 선수가 먼저 있은 쇼트프로그램에서 2위를 차지했다. 바로 언론에서 난리를 쳤고 국민들도 법석을 떨었다. 2위에 그치는 건 절대 안 되고, 당연히 1위를 차지했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참 가벼운 국민성을 보였다.
19살 나이에 세계 무대에 나가 2위를 할 때도 있고, 아니면 그보다 못한 성적을 올릴 때도 있는거지 마치 '김연아는 1등 아니면 안 돼'라는 조급함을 보였다.

사람에게 생체리듬이 있어 어떤 때는 기분이 '업'되고, 어떤 때는 '다운'되기도 한다. 일이 잘될 때도 있고, 반대로 일이 영 안 풀릴 때도 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때그때 완급을 조절하며 적응한다. 운동선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우리 국민들은 김연아에게 이를 허용치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프리스케이팅에서 점수를 만회,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 3차례 우승이라는 기록을 덤으로 안았다.
김연아 선수는 한창 더 뻗어나갈 선수다. 그런 선수에게 완벽을 요하는 기대는 스트레스만 줄 뿐이다. 얼마 전 수영의 박태환 선수가 베이징올림픽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올리자 역시 같은 반응을 보였다. 박태환 선수의 성적 저조는 국민들의 조급증, 어떤 사정이 있든 금메달만 따라는 무언의 압박이 한 몫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 김연아 선수를 조용히, 멀찌감치서 응원하는 한 템포 늦추는 관심이 필요하다.지나친 기대와 관심은 자칫 선수를 버린다. 앞뒤 재지않는 국민들의 성원과 언론의 띄우기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쓸데없는 견제, 별 도움 안 되는 도전만 늘어날 뿐이다. 이것 역시 '냄비근성'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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