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알프스라 불리는 산이 있다. 충북 제일의 명산이며 호서의 소금강인 속리산에서 뚝 떨어져 나와 웅장하고 수려한 아홉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구병산. 동쪽에서 서쪽으로 마치 병풍을 두른 듯 장엄하기조차 하다. 별자리처럼 빨간 감이 주렁주렁한 적암리 고샅길을 돌아 그 산에 올랐다. 금년 가을이다.
853봉에서 바위틈에 핀 쑥부쟁이를 보았다. 잠깐의 휴식 중 발아래의 영물과 맞닥뜨리듯 쑥부쟁이가 가슴에서 영롱하다.
태양과 바람과 비와 어둠을 온전하게 겪은 쑥부쟁이. 그 꽃은 환희와 암흑과 기쁨과 슬픔과 성취와 실패와 세상의 모든 것들과 교감의 열매를 잉태하고 있으리.
바위틈서리 겨우 조막손 한줌도 안 되는 흙에 사투하며 줄기와 잎과 드디어 환희의 꽃으로 성장한 쑥부쟁이가 가슴에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봉우리에서 바라본 하늘은 이마를 푸르게 적신 듯 말갛다. 쑥부쟁이 꽃잎이 잠자리 날개처럼 여유롭다. 바람을 버텨 온 잎에서 숭고한 환희가 엿보인다. 인내와 사투가 점철된 아름다움이다. 권력과 명예와 돈과 권모술수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청초함이다.
눈이 팡팡 내려도,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도 단열과 소음 차단 성능이 뛰어난 창을 닫아두면 한겨울에도 실내는 봄이다. 거실에 벚나무가 심어졌다면 연분홍 꽃잎을 틔워낼 무릉도원이다. 피자나 치킨 또는 술안주를 시켜 놓고 시청률이 높은 채널을 돌리는 여유와 행운을 소유한
사람이 많다. 쉽게 편안해질 수 있고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 많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편안해질 수 없는 사람도 있다. 행복은 창문너머 사람들만의 소유라며 평생 소외되는 사람도 있다. 조막손 한 줌의 흙에 뿌리를 내린 쑥부쟁이처럼 가능과 불가능의 경계에서 사투하며 사는 사람. 오히려 이들에게 비록 달콤하지는 못하지만 맵고 쓴 언어에서 세상을 읽는 지혜가 있지 않을까.
강폭이 넓을수록 돌이 동글동글하다. 계곡으로 가면 거친 돌이 많다. 산에 오르면 거친 돌로 부서질 바위가 있다. 골짜기 물은 급하고 요란하다. 계곡에서 상처를 입으며 거칠게 굴러야 모나지 않은 돌이 된다. 깨달음과 배움이 깊을수록 마음과 언어와 행동이 동글동글하다.
구병산 853봉에서 바위틈에 핀, 세상의 모든 것들과 교감의 열매를 잉태 쑥부쟁이. 비바람도 맞아 보고, 암흑에 홀로 묻혀 소외와 두려움에 몸서리쳐 보고픈 욕망이 솟는다. 난방이 되지 않는 외딴집에서 하룻밤 묶고 싶다. 산에서 계곡으로 훑어 내리는 바람에 작달비가 문짝을 우두둑 두드리는 방에 갇혀보고 싶다. 그리고 내안에 고여 있던 낱말들을 모두 꺼내서 구슬처럼 꿰어보고 싶다.
아침이 오고 하늘이 말갛게 개면 반듯한 지름길은 다른 사람이 가도록 비워두고 오솔길이 만들어낸 곡선으로 걸어가고 싶다.

